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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독논’을 지켜주세요

[김준의 섬섬옥수] 완도 청산도

2018.12.20 김준 섬마실 길라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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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물처럼 여행객이 빠져나간 포구는 고요하다 못해 적막하다. 진정 청산의 맛을 느낄 줄 아는 사람들은 이때부터 청산여행을 시작한다. 섬도 쉬고 섬사람도 쉬는 시간이다.

구들장논도 옷을 벗고 알몸을 드러내고, 고샅도 독다물이 화장기 없는 민낯으로 반긴다. 찬바람이 나고 여행객의 발걸음이 뜸할 때 시작해 봄바람이 불기 전까지가 청산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최적의 시간이다.

청산도 입도조들이 들어와 정착 곳이라는 덜리에서 바라본 상서리와 상산포다. 당시 이 곳이 청산도의 중심이었다.
청산도 입도조들이 들어와 정착 곳이라는 덜리에서 바라본 상서리와 상산포다. 당시 이 곳이 청산도의 중심이었다.

청산도를 하면 십중팔구는 ‘슬로시티’를 떠올린다. 2007년 아시아 최초로 슬로시티로 지정된 후 청산도를 관광명소로 만들기 위해 축제를 비롯한 다양한 이벤트를 개최했으니 당연한 반응이다.

그 사이 청산도의 정체성을 잘 설명해주는 ‘구들장논’은 잊혀지고 있다. 사실 나이가 많은 주민들은 구들장논보다는 ‘방독논’으로 기억한다. 전라도에서는 ‘구들’을 ‘방독’이라 불렀다.

양지리에 사는 방독논 산증인 임화규(1933년생)는 ‘구들장논’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이 1982년 대홍수 때 논이 무너져 피해조사차 방문한 조사단이 논의 구조를 보고 ‘구들’을 닮아 부르면서 생겨난 이름이라고 한다. 구들장논이 2013년 1월 국가농업유산 제1호로 지정되었고, 2014년 세계농업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청산도 상징은 ‘방독논’이다

공도정책 이후 청산도에 들어온 사람들이 처음으로 마을 이룬 곳은 ‘덜리’이다. 덜은 ‘들’로 해석되기도 한다. 400여년 전인 1608년으로 추정한다. 상서마을 방독논 배미들이 모여 있는 위쪽이다. 상서리는 청산도에서도 방독논이 가장 많은 마을이다.

뿐만 아니라 돌담 등록문화재(2006), 자연생태마을(2011), 국립공원 명품마을(2011)로 지정되기도 했다. 지금은 서쪽 도청항이 중심지이지만 당시에는 덜리와 가까운 상사포가 중심이었다. 평평한 해안에 모래나 몽돌 해안이 발달해 바람을 이용하고 노를 젓는 풍선이 정박하기 좋은 곳이다.

양지리.
양지리.

청산도에는 상서리, 부훙리, 양지리 마을이 위치에만 57필지 4.9ha에 이르는 방독논이 있다. 이곳은 대성산, 대봉산, 보적산, 매봉산 안쪽에 구릉지에 위치한 마을로 청산도에 ‘해중산변’이라 불리는 곳이다.

청산도에서 가장 일찍 방독논이 만들어진 곳으로 상서리와 부흥리로 18세기까지 조성된 것으로 추정한다. 양지리는 최근 20세기에 이르러서도 만들어졌다. 특히 부흥리는 뒷산 대봉산(379) 8, 9부 능선까지 확인되었다.

이들 지역은 산으로 둘러싸여 물은 풍부했지만 산골짝인데다 돌밭이 대부분이라 물을 가둘 수 없어 쉬 바다로 빠져나갔다. 벼농사를 짓는데 일찍부터 어려움이 많았다. 대신에 양지라 택지로는 안성맞춤이다.

반대로 맞은편 청계리 일대는 음지로 택지로는 좋지 않지만 논을 만들고 물관리가 수월하다. 삶의 지혜는 늘 어려운 생존조건에서 만들어진 적응에서 생겨난다. 석축을 쌓고 물 관리 등 수리공동체를 만들어 불가능한 벼농사를 가능케 했다.

‘방독논’은 과학이다

방독논의 이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물이 나온다 해서 ‘수문배미’, 수문배이 옆에 작은 방독논을 ‘옹살이’, 배미 중에서 가장 놓은 논을 ‘상토배미’, 둠벙이 있어 ‘둠벙배미’, 보를 통해서 물이 들어가 첫 논을 봇배미, 샘과 연결된 논을 샘배미 등 다양하다. 그만큼  농사를 위해 지형과 생태에 천착했다는 의미이다.

구들장논의 구조.
구들장논의 구조.

일반 논과 무엇이 다를까. 우선 물관리를 보면 일반논은 지표면으로 용수로와 배수로가 있지만 방독논은 지하에 통수로를 사용한다. 논바닥에 방독, 넓은 판석을 깔아서 흙을 올렸다. 물관리가 중요하니 모둠마다 물관리를 하는 수리계 ‘보작인’이 있었다.

방독논이 발달한 곳에 무려 13개의 작은 보가 만들어졌고, 대여섯 명으로 이루어진 노동조직이 있었다. 벼농사를 시작할 무렵 이들은 모여서 농사 계획을 세우고 물을 관리했다. 소를 이용해 쟁기질하는 ‘소언두’도 있었다.

방독논은 세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맨 밑에 1-1.5m정도 심지어 3m까지 ‘하부축’을 쌓기도 했다. 그 위에 20-30㎝정도로 작은 돌과 흙으로 버무려 물이 빠지지 않도록 덮는다. 이를 ‘밑복굴’이라 한다. 마무리는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좋은 흙으로 20-30㎝를 덮는다. 이를 ‘윗복굴’이라 한다. 하부축에 물길(통수로)를 만들고 방독처럼 납작한 돌을 얹어 수로를 만든다. 이점이 다랭이논과 차이다.

구들장논 단면도.
구들장논 단면도.

통수로 기능은 물을 공급하는 역할이다. 윗배미에서 아랫배미로 물을 공급하기 위한 수로역할이다. 다음은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큰 비가 왔을 때 급류가 되어 농지를 덮쳐 사태가 나는 것을 막는 홍수방지 역할이다.

셋째로 물을 가두어 놓는 저수지 역할을 한다. 여기까지만 해도 그 가치가 탁월하다. 최근에 방독논의 생태적 기능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방독논은 긴 꼬리투구새우, 메뚜기, 소금쟁이, 미꾸라지까지 서식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동부천을 따라 펼쳐진 구들장논, 마을, 갯벌, 바다로 이어지는 문화경관이다. 청산사람들이 400년 동안 지키고 가꾸어온 세계에 자랑할 만한 문화유산이다.

통수로.
통수로.

청산도탕을 아시나요

방독논을 쟁기질을 할 때는 깊이 갈지 않고 위만 살짝 긁는 경운방식이다. 판석 위에 덮은 흙의 두께 얕기 때문이다. 땅심을 스스로 회복하기 어려우니 그만큼 농부의 배려가 깊어져야 한다. 화학비료가 없었던 시절에 산에서 베어온 풀을 집어넣어 퇴비로 사용했다. 이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풀은 퇴비가 되기 전에 두 가지 일을 한다. 먼저 물을 잡아 놓는다. 물이 쉬 빠지는 땅이니 물을 잡고 있을 저수지 혹은 스펀지가 필요하다. 이탄층을 상상해보라. 두 번째는 판석 사이를 메워 물을 가두는 역할도 한다. 논이 습지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퇴비로 쌀농사를 짓는 밑거름이 되는 것이다. 구들장논의 땅심이 약해진 결정적인 이유는 화학비료와 농약에 있다. 일반 무논과 다른 자연순환형 벼농사농업체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경운, 관계. 시비 등에서 독특한 자연순환형 벼농사 농업체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보릿고개를 넘겼던 톳밥으로 재현한 청산도밥상.
보릿고개를 넘겼던 톳밥으로 재현한 청산도밥상.

논이 적어 ‘청산 큰애기 쌀 두말 먹고 시집가면 부자집이다’라고 했다. 특히 방독논이 발달한 마을은 파래라도 한 주먹 밥상에 올리려면 남의 갯밭에 ‘파래서리’라도 해야 한다. 바다와 접해 있지 않으니 마을어장이 없어 오직 방독논에 의지해야 했다.

쌀은 말할 것도 없고 보리도 귀해 고구마와 톳밥으로 보릿고개를 넘겼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청산도탕’이다. 방독논에서 수확한 쌀과 문어, 전복 등 해산물과 야채를 넣은 전통음식이다. 제물로도 올렸다고 한다.

위기와 기회, 선택의 기로

섬살이의 지혜가 응축된 구들장논이 위기다. 농사지을 사람이 없어서다. 산중턱에 자리잡은 부흥리 뒤쪽 작은 배미의 구들장논들은 묵정밭으로 변하지 오래되었다. 접근성이 좋은 양지리나 부흥리도 쌀농사를 멈춘 곳이 속출하고 있다. 밭농사라도 하는 곳은 그나마 다행이다.

사실 청산슬로시티가 가장 먼저 주목하고 지켜야 할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구들장논’이다. 지난 10년 동안 슬로시티 정책은 관광객 유치에만 집중했다. 그 덕에 일년에 수십만 명이 찾고 있다. 그런데 구들장논은 묵정논으로 바뀌고 있다. 부흥리 위쪽 구들장논은 칡넝쿨과 잡목이 자라고 있다.

상서리 구들장논에 서식하는 긴꼬리투구새우.
상서리 구들장논에 서식하는 긴꼬리투구새우.

최근 청산도 주민들로 구성된 ‘구들장논연구회’에서 경관작물을 심기 위해 묵정논을 일구고 있다. 이제 청산을 사랑하는 여행자와 소비자들이 답을 해야 한다. 청산도를 지키고 섬살이가 지속될 수 있기를 원한다면 구들장논 쌀을 사주고, 농사철에 모내기와 풀베기와 벼베기에 함께 해주어야 한다.

완도군은 구들장논 쌀을 이용해 술, 과자, 떡 심지어 라면까지 다양한 상품을 만들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야 한다. 청산도가 그냥 관광지가 아니라 청산다움을 간직한 여행지가 되려면 구들장논에 다시 모내기기 시작되어야 한다. 나이들이 힘에 부친 섬주민을 대신해 도시에서 젊은 청년들이, 여행객들이 나서야 한다.

김준

◆ 김준 섬마실 길라잡이

어촌사회 연구로 학위를 받은 후, 섬이 학교이고 섬사람이 선생님이라는 믿음으로 27년 동안 섬 길을 걷고 있다. 광주전남연구원에서 해양관광, 섬여행, 갯벌문화, 어촌사회, 지역문화 등을 연구하고 정책을 개발을 하고 있다. 틈틈이 ‘섬살이’를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며 ‘섬문화답사기’라는 책을 쓰고 있다. 쓴 책으로 섬문화답사기, 섬살이, 바다맛기행, 물고기가 왜, 김준의 갯벌이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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