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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를수록 고개 숙여지는 영산 - 한라산 | 아름다운 명산100   (전체공개) 2009-10-31 21:15
http://blog.korea.kr/app/log/foanews/40625554

[한국의 명산 100](100) 제주 한라산

한라산은 영산이다. 해발 1950m의 남한 최고봉이라는 찬사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산악인들은 '인간의 산이 아니라 신의 산으로 떠받들며 고개숙인다. 기축년 첫날 한라산은 순백의 운무에 휩싸였다. 새해 첫 일출을 보기 위해 한라산 어리목을 찾은 등산객들은 거센 바람과 함께 눈보라를 흩뿌리는 한라산의 위용에 저절로 겸손해진다. 겨울 한라산은 산사람의 나태와 교만을 용서치 않는다. 사진작가 서재철씨는 '올 겨울은 어느 해보다 눈이 빨리와서 한라산이 만설을 이뤘다'며 '추위가 매섭고 정상부에 설원이 펼쳐져 히말라야 원정을 가는 팀도 꼭 한라산에서 기후적응 훈련을 받는다'고 말했다.

은하수를 손으로 잡아당길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산이란 뜻의 한라산. 기암괴석과 다양한 식생분포, 흰사슴을 탄 신선이 물을 마셨다는 전설이 녹아든 백록담 등을 품은 명산 중의 명산이다. 한라산은 약 120만년 전에 바다 한가운데서 솟아나기 시작해 30만~10만년 전의 3단계 화산활동 때 생성됐다. 그 이름은 '은하수를 손으로 잡아당길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산이라는 의미다. 영실의 오백나한도 이때 탄생했다. 2만5000년 전의 마지막 대폭발로 백록담과 현재의 장축 73㎞, 단축 31㎞인 제주도 해안선이 완성됐다. 그만큼 한라산은 젊은 산이다. 백록담은 제주 곳곳에 산재한 360여개의 오름을 품고 있다. 휴화산으로 대부분이 현무암으로 덮인 한라산은 그 줄기가 동서로 뻗어 있고, 남쪽은 급한 반면 북쪽은 완만하다.

제주 섬 중앙에 우뚝 솟은 한라산의 웅장한 자태는 자애로우면서도 강인하다. 한라산의 사계절은 독특한 아름다움을 뽐내지만 그 중에서도 겨울 한라산은 절경 중의 절경으로 꼽힌다. 해양성 기후에 따른 높은 습도와 매서운 북서계절풍이 만들어내는 눈꽃은 환상 그 자체다. 바위와 나무에 얼어붙어 스스로 겨울 눈꽃의 운명을 인고한다. 한라산은 다양한 식생분포로 동·식물의 보고이기도 하다. 아열대에서 한대 기후대까지 수직분포를 보이며 1800여종의 식물과 4000여종의 동물이 서식한다. 등산로 곳곳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노루의 맑은 눈망울은 한라산 등반의 숨겨진 즐거움이다.

한라산 노루는 한때 멸종위기에 놓였으나 80년대 후반부터 적극적인 보호 활동을 펼친 끝에 현재 3000여마리로 불어났다. 1800여종의 식물 중 구상나무와 시로미는 군락을 이룬다. 한라산을 이야기하며 정상의 백록담을 빼놓을 순 없다. 깊이 108m의 산정화구인 백록담은 흰사슴을 탄 신선이 물을 마셨다는 전설을 품고 있다. 인근에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돌매화 나무도 자란다. 최근에서 한라산 중턱에서 '소백록담이 발견돼 화제다. 그러나 등반통제구역이어서 등산 마니아들의 애를 태우고 있다.

주봉인 백록담을 타고 내려오면 윗세오름과 방아오름이 양쪽으로 늘어서있는 '선작지왓을 만난다. 털진달래와 산철쭉이 만개한 드넓은 고산지대의 초원이다. 백록담에서 고개를 돌리면 500여개의 돌기둥이 하늘을 향해 치솟아 오백나한으로 불리는 영실기암이 눈에 들어찬다. 백록담 동북쪽 왕관릉과 삼각봉의 위용 역시 영실기암 못지않다. 한라산 북서쪽에는 어리목계곡이 자리잡고 있다. 동쪽의 탐라계곡과 더불어 한라산의 가장 깊고 큰 계곡중 하나다. 어승생악 동쪽에 밀집한 골짜기는 '구구곡'으로 기암괴석이 수목 속에 들어서 속세와 절연된 느낌이다. 한라산은 화산회토이다 보니 빗물이 쉽게 스며들어 장마철 폭우때 외에는 대부분의 계곡은 물이 흐르지 않는 건천이다.한라산의 신비와 가치는 이미 세계가 인정했다. 유네스코는 한라산 천연보호구역을 2006년 6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했다. 경관이 빼어날 뿐 아니라 지질학적, 생물학적으로도 탁월한 가치를 지닌 명산이라는 의미다.

성판악·관음사 코스…정상까지 등반 가능

제주시에서 한라산 동쪽 중허리를 가로질러 서귀포를 잇는 5·16도로는 숲속 관광도로다. 한라산 서쪽 중허리를 가로질러 제주에서 중문을 연결하는 1100도로는 1100고지를 통과한다. 한라산 등산코스는 이들 도로에서 시작된다. 현재 등산 가능한 코스는 4개. 이중 성판악과 관음사 코스는 정상등반이 가능하며, 어리목과 영실코스는 해발 1700m 윗세오름까지만 오를 수 있다. 윗세오름에서 정상까지의 서북벽 구간은 자연휴식년제가 적용돼 출입이 통제됐다.

어리목코스는 한라산 서북쪽 코스로 4.7㎞, 약 2시간 거리다. 졸참나무 숲으로 이어지는 어리목 계곡을 지나 나무계단으로 된 숲 지대를 1시간쯤 걸으면 시원스럽게 펼쳐진 사제비동산이 나온다. 이곳에서 한라산 정기를 담은 약수를 한모금 마시고 만세동산으로 이어지는 돌길로 들어선다. 노루를 벗삼아 걷다보면 어느새 백록담 화구벽을 눈앞에 두고 최근 새로 단장한 윗세오름 대피소를 만나게 된다. 영실코스는 한라산 서남쪽 코스로 가장 짧은 등산로다. 기암괴석의 빼어난 경관은 3.7㎞의 등반로를 단숨에 올라가게 만든다. 윗세오름까지 1시간30분쯤 걸린다. 1100도로에서 영실진입로 2.5㎞ 지점에 매표소가 있고, 이곳에서 등산로 입구까지 도보로 45분쯤 소요된다. 오를 때는 어리목코스, 하산은 영실코스로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성판악코스는 등산로가 비교적 완만해 정상등반을 하는 코스로 즐겨 이용된다. 등산로는 활엽수가 우거져 삼림욕도 겸할 수 있다. 해발 1800고지에는 구상나무 군락지대다. 7.3㎞로 4시간30분 거리다. 8.7㎞의 관음사코스는 계곡이 깊고 산세가 웅장해 한라산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성판악코스 이용자들이 하산코스로 많이 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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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의 '단전'… 하늘 떠받친 암봉 - 희양산 | 아름다운 명산100   (전체공개) 2009-10-31 21:05
http://blog.korea.kr/app/log/foanews/40625552

[한국의 명산 100](99) 경북 문경 희양산

희양산은 문경새재에서 속리산쪽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줄기에 우뚝 솟아 있다. 경북 문경시 가은읍과 충북 괴산군 연풍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산중턱에서 정상쪽으로 암벽을 두르고 솟아 있어 마치 산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바위처럼 보인다. 희양산은 백두대간의 ‘단전’ 부분에 위치해 있다. 이 때문인지 화강암 바위들로 이뤄진 해발 999m의 암봉은 멀리서 봐도 단단한 기운이 느껴진다.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듯한 기세다. 신라 헌강왕 때 지증대사는 “스님들의 거처가 되지 못하면 도적의 소굴이 될 것”이라며 희양산 남쪽 너른 터에 봉암사를 창건, 선풍을 크게 떨쳤다.

봉암사 인근 계곡은 예로부터 ‘봉암용곡(鳳巖龍谷)’이라 불려왔다. 봉황과 같은 바위산에 용과 같은 계곡이 흐른다고 해서다. 20여리에 이르는 계곡에는 맑은 물줄기가 분재 같은 노송을 벗하며 넓은 암반 위를 힘차게 흘러내린다. 지증대사는 “산이 사방에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으니 마치 봉황의 날개가 구름을 치며 올라가는 듯하고 계곡물은 백겹으로 띠처럼 되어 있으니 용의 허리가 돌에 엎드려 있는 듯하다”며 경탄했다. 봉암사에서 산길을 따라 10분쯤 오르면 가슴이 확 트이는 널따란 암반이 나타난다. 백운대다. 암반 위 집채만한 바위에는 마애보살좌상이 새겨져 있고 그 앞 너럭바위 위로는 차가운 계곡물이 세차게 흐른다. 금강산 만폭동에 견줄 만하다. 좌상 앞 반석을 돌로 두드리면 목탁소리가 난다. 정상은 거대한 바윗덩이들로 이뤄졌다. 남쪽 봉암사가 자리한 봉암용곡 너머로 대야산, 속리산 줄기가 솟아 있고 서쪽으로는 백두대간을 연결시키는 장성봉과 악희봉, 민주지산 등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다. 동북쪽으로는 백화산, 운달산, 주흘산 줄기가 막힘없이 펼쳐져 있어 장쾌하다.

정상 못미쳐 해발 928m 지점에는 희양산성이 있다. 신라와 후백제가 국경을 다투던 접전지로 치열했던 역사가 배어있다. 희양산에 서린 역사와 정기는 봉암사가 대변한다. 문경쪽에 있는 봉암사는 희양산의 가장 넓고 깊은 터에 자리잡았다. 신라 헌강왕 5년(879년)에 창건돼 구산선문 가운데 하나인 희양산문을 이뤘다. 근대 들어서는 저 유명한 ‘봉암 결사’가 이뤄진 한국 현대불교의 ‘탯자리’다. 해방 직후인 1947년 성철, 청담, 자운스님 등이 “부처의 법대로만 살아보자”며 용맹정진한 곳이다. 이 때부터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동안 먹지도 않는다(一日不作 一日不食)’는 것이 기본 수칙이 됐다. 수행자들이 밭을 일구고 지쳐 선방에서 졸기라도 할라치면 “밥값 내놔라, 이놈들아!”하는 성철스님의 호통이 희양산을 쩌렁쩌렁 울렸다.

1982년부터는 수행에만 정진할 수 있도록 봉암사는 물론 일대 사찰림의 일반인 출입을 금했다. 일년에 딱 한 번 부처님 오신 날만 산문을 여는 ‘비밀 수도원’이 됐다. 이날도 경내만 개방될 뿐 산길을 밟지는 못한다. 사람의 발길이 끊어지다시피 하면서 고란초, 솔나리, 까막딱따구리, 원앙 등 온갖 희귀 동식물이 모여 사는 생태계의 보고가 됐다. 백두대간 일대의 산짐승들이 주변에서 총소리가 나면 희양산으로 달려온다는 이야기가 나올 만큼 동식물들의 낙원이다. 2002년에는 봉암사 일대 2293㏊가 산림유전자원보호림으로 지정됐다. 봉암사는 보물 등 지정문화재만 10점에 이르는 문화재의 보고이기도 하다. 지증대사의 일대기와 봉암사의 유래를 새긴 지증대사적조탑비(보물 제138호)는 1000년이 훨씬 지난 지금에도 거의 모든 글자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온전하다.

봉암사와 더 깊은 산골의 큰바위로 지붕을 삼은 월봉토굴, 용추토굴에서는 큰스님들이 ‘목숨을 건’ 수행을 이어가고 있다.자연에 순응하는 뭇 생명의 낙원이면서 자연과 ‘법’을 거스르면 금방이라도 죽비와 함께 “밥값 내놓아라”는 호통은 감수해야 할 듯한 추상같은 기운이 느껴지는 산. 백두대간의 단전 부분에 위치한 희양산은 그런 모습이다.

은티마을에서 출발…가파른 비탈길 조심

희양산 산행을 하려면 충북 괴산군 연풍면 은티마을에서 시작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희양산 남쪽에 자리한 봉암사를 기점으로 생각하지만 봉암사가 있는 문경쪽에서는 오를 수가 없다. 일대가 봉암사 사찰림이고 조계종 특별수도원인 데다 산림유전자원보호림이어서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은티마을에서 지름티재를 거쳐 정상에 오르는 방법밖에 없다. 정상부 암봉은 우회해서 오른다. 비탈이 가파르고 험한 데다 바윗길이 이어져 있어 조심해야 한다. 정상 부근에서도 봉암사가 있는 남쪽 방향은 곳곳이 막혀 있다. 왕복 4시간50분가량 걸린다. 스님들이 막고 있는 문경쪽으로는 갈 수도 없지만 아예 갈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오랜 세월 동안 사람의 발길이 끊어져 등산로가 없어지다시피해 원시림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새와 다람쥐는 자유로이 드나들어도 속인은 물론 일반 스님들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문턱이 높은 절집. 일년에 딱 한 번 산문을 여는 부처님 오신 날에 맞춰 봉암사 답사를 하는 것도 좋다. 신라 경순왕이 잠시 피난왔을 때 원당으로 사용됐던 극락전과 최치원이 지은 지증대사 비문, 대웅전 앞의 삼층석탑 등 천년이 넘게 희양산과 봉암사를 지켜온 ‘보물’이 즐비하다. 동방 제일의 수행 도량에서 희양산의 기운을 느껴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희양산 주변 문경시 가은읍에는 둘러볼 거리도 많다. 가은읍 소재지 쪽에 석탄박물관과 드라마 연개소문 오픈 세트장이 있다. 문경지역의 마지막 광업소였던 은성광업소 자리에 있는 석탄박물관은 폐광을 활용, 갱도 체험 등을 할 수 있도록 꾸며놓아 당시 탄광촌의 생활상 등을 실감할 수 있다. 인근에 철로자전거를 탈 수 있는 역도 있다. 조금 떨어진 완장리에는 구한말 의병을 일으킨 도창의대장 운강 이강년 선생 기념관이, 갈전리에는 견훤의 출생 설화가 얽혀있는 금하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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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릉에 앉아, 눈으로 들이켜는 백두대간 - 황장산 | 아름다운 명산100   (전체공개) 2009-10-31 20:57
http://blog.korea.kr/app/log/foanews/40625551

 

[한국의 명산 100](98) 경북 문경 동로면 황장산

황장산(1077.3m)은 백두대간 남한 구간의 중간쯤에 우뚝 솟아있다. 소백산을 지나 지리산으로 흐르는 백두대간이 110㎞에 이르는 문경 구간 초입에 황장산을 빚어놓았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경북 문경시 동로면이다. 골짜기가 깊어 원시림이 잘 보전돼 있고, 암릉과 암벽이 빼어나다. 대미산, 포암산, 부봉으로 물길처럼 흐르는 백두대간 길과 단양의 도락산 등 주변 명산들을 한 폭의 동양화 보듯 감상하며 오를 수 있는, 조망미가 특히 뛰어난 산이다.

황장산의 이름은 황장목이 많은 데서 유래했다. 황장목은 왕실에서 대궐이나 임금의 관, 배 등을 만드는 데 쓰는 최고 품질의 소나무를 말한다. 송진이 꽉 차 속살은 누렇고, 목질이 단단하고 결도 곱다. 조선 숙종 때(1680년)는 나무 보호를 위해 벌목과 개간을 금지하는 봉산(封山)으로 정하고 관리를 파견, 감시했다. 당시 세워진 봉산 표석(지방문화재 제227호)이 명전리에 남아 있다. 지금은 안타깝게도 과도한 벌채 등으로 황장목이 없다.

황장산의 옛 이름은 작성산(鵲城山)이다. 동국여지승람과 대동지지에 그렇게 표기돼 있다. 산세가 까치집처럼 생겼고 작성(鵲城)이란 성터가 있다. 조선 중기까지 작성산으로 불려오다 봉산으로 지정되면서 자연스럽게 산 이름이 황장산으로 바뀐 듯하다. 황장산이 있는 동로면은 고려시대까지 작성현(鵲城縣)으로 불렸고, 황장산 문안골에는 성문 문설주 등 고구려성으로 추정되는 작성의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 한국전쟁 때는 빨치산과 토벌대, 인민군과 국군간 격전이 벌어지는 등 치열했던 우리 역사가 고스란히 배어있다.

황장산의 능선들은 크고 작은 바위들로 이뤄져 있다. 암산답게 곳곳에서 암봉의 비경이 펼쳐진다. 베를 한 올 한 올 늘어뜨려 놓은 것 처럼 생긴 ‘베바위’, 화강암 절벽이 치마를 펼친 것 같다 하여 이름지어진 ‘치마바위’, 비녀를 꽂아 쪽을 진 것처럼 생긴 감투봉, 투구봉, 조망바위 등이 산세와 조화를 이룬다. 기암괴석 사이에 뿌리를 박고 세찬 풍파를 견뎌온 소나무들은 운치를 더한다. 정상 아래 수직에 가까운 멧등바위와 부근 암릉지대에서는 로프를 잡고 절벽 구간을 오르는 스릴감을 느낄 수 있다. 거친 암릉 구간이 많지만 암벽 등반 코스로 인기가 높은 수리봉(841m) 촛대바위 등 일부를 제외하고 장비 없이 오르지 못할 바위는 거의 없다.

생달2리 안산다리마을 위 차갓재에는 ‘백두대간 남한 구간 중간 지점’이라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통일이여! 통일이여!/민족의 가슴을 멍들게 한/철조망이 걷히고/막혔던 혈관을 뚫고/끓는 피가 맑게 흐르는 날/대간 길 마루금에 흩날리는/풋풋한 풀꽃 내음을 맘껏 호흡하며/물안개 피는 북녘땅 삼재령에서/다시 한 번 힘찬 발걸음 내딛는/네 모습이 보고 싶다.’ 표지석 뒷면에는 이 같은 산악인들의 염원이 새겨져 있다. 문경지역 산악회에서 세운 것이다. 좌우에는 두 장승, ‘백두대장군’과 ‘지리여장군’이 서 있다.

정상쪽 능선에 오르면 백두대간 길과 백두대간에서 가지쳐 나간 주변 명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서남쪽으로 대미산·운달산·주흘산, 북쪽으로 도락산, 북서쪽으로 월악산, 동북쪽으로 황정산과 그 뒤로 소백산이 한 폭의 화첩처럼 펼쳐진다. 문안골, 토시골, 우망골 등 남북으로 몇 갈래씩 뻗어나간 골짜기는 반나절은 족히 걸릴 만큼 펑퍼짐하고 깊다. 거친 능선과 달리 수천년 동안 피흘리며 쓰러진 남정네들을 감싸안은 여인의 넓고 넓은 치맛자락 같은 모습이다. 가파르거나 험하지 않아 계곡산행의 묘미를 즐길 수 있다.

전설 깃든 옛 명당에서 오미자 한잔, 호산춘 한잔

황장산은 사방으로 여러 갈래 길이 나 있다. 문경시 동로면 생달2리 안산다리마을에서 차갓재나 작은차갓재로 오르는 길이 있고, 동로초교 생달분교에서 토시골로 오르는 길, 단양군 대강면에서 문안골로 오르는 길, 벌재나 황장산 약수에서 백두대간을 따라 오르는 길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안산다리마을에서 차갓재나 작은차갓재로 올라 백두대간 길을 밟고 정상에 오른 뒤 산태골로 내려오는 원점 회귀 산행 코스가 많이 알려져 있다. 차갓재에서 정상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능선의 아기자기한 암릉미를 즐기며 사방에 솟아있는 주변 산들을 감상할 수 있다. 산행 시간은 4시간 안팎이다. 안산다리마을에서 작은차갓재로 올라 백두대간을 타고 정상에서 계속해서 감투봉, 황장재, 치마바위, 폐맥이재를 거쳐 벌재까지 가는 데는 4시간30분가량 걸린다.

산행 기점으로 많이 이용되는 안산다리마을에는 백두대간 종주자들이 주로 찾는 민박집이 여러 곳 있다. 황장산 기슭 동로면 일대는 오미자로 유명하다. 생달1리에는 오미자청을 만들며 농·산촌을 체험할 수 있는 오미자체험마을도 있다. 면소재지에서 생달리간 도로변(적성리)에는 풍수설과 관련한 전설이 깃들어있는 말(馬)무덤이 수령 300년 된 큰 소나무와 어우러져 있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에서 귀화한 두사충이 조선의 팔대 명당 중 하나라고 전하는 명당을 적성리에서 발견,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정탁의 머슴에게 일러주어 나중에 정탁의 아들이 찾아나섰는데 타고온 말이 갑자기 뒷발질을 해 머슴이 즉사하자 화가 나 말의 목을 베어 묻었다는 곳이다. 산악인들이 간단하게 술 한 잔 하며 황장산 산행을 결산하는 장소로 많이 애용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시내 쪽으로 차로 10분쯤 가면 경천호가 나오고 이어 도로변에 황희 정승 후손들이 500년을 빚어온 명주 ‘호산춘’ 제조장(산북면 대하리, 054-552-7036)이 나온다. 호산춘은 장수 황씨 사정공파 종택에서 전승돼온 솔향 그윽한 가양주로 이곳에서만 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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