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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곡보다 노랫말 짓기가 훨씬 어려웠다” 영훈씨! 이제! 우리 인생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은 영훈씨의 음악들과 영훈씨를 기억하기 위해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당신의 노래비를 세웁니다. 영훈을 사랑하는 친구들이. 2009. 2. 14. 이날은 대장암으로 투병하다 47세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이문세의 영원한 음악적 파트너 이영훈의 1주기를 맞는 날이었다. 2009년 2월 14일 이영훈 1주기에 정동길에 세워진 이영훈 노래비. 서울시가 허가하고 건립을 지원한 최초의 대중문화 노래비다. (ⓒ네이버 지식백과) 노래비는 그가 작사·작곡한 광화문 연가 가사에 나오는 조그만 교회당(정동제일교회) 맞은편에 세워졌다. 아날로그 마이크 모양의 조각 아래 그의 얼굴이 새겨졌고 아랫단 양쪽에는 광화문 연가 노랫말과 대표곡 목록이 써졌다. 서울시가 허가하고 건립 지원을 한 최초의 대중문화 노래비다. 개막식에는 이문세가 나와 노래했고 많은 동료 가수와 오세훈 시장이 참석했다. 이영훈이 생전에 사랑했던 곳에 노래비를 세워주며 사람들은 그를 그리워했다. 작곡가에게 이만한 축복이 어디 있을까. 명동에 대한 노래도 적지 않지만 명동에 가수나 작곡가의 노래비는 없다. 고인의 아들 이정환 군은 광화문 돌담길에 아버지가 쓴 수많은 서정시의 흔적이 영원히 남게 돼 가슴이 벅차오른다. 이 노래비를 보고 광화문 연가를 불러주고 추억하면 여러분과 내 마음속에 아버지가 영원히 계실 것이라며 유족을 대신해 인사했다. 2021년 뮤지컬 광화문 연가 시즌3 포스터. 윤도현, 엄기준, 강필석, 차지연, 김호영, 김성규 등이 출연했다. (ⓒ이문세 팬클럽 마굿간) 그가 떠난 지 3년 후인 2011년 그가 맘마미아를 보고 구상했던 뮤지컬 광화문 연가가 세종문화회관에 막을 올렸다. 2021년에 세 번째 시즌까지 나왔다. 대중음악 작곡가를 위한 헌정 공연 또한 처음 있는 일이다. 그를 사랑한 많은 가수들이 무보수로 출연해 노래했다. 1985년 킹레코드라는 녹음실에서 아르바이트로 밴드 피아노 반주를 하고 있었는데, 신촌블루스의 엄인호씨가 어떤 가수가 작곡가를 구한다며 나를 소개시켜 주었어요. (이영훈 생전 인터뷰) 굉장히 수줍어하는 그에게 곡을 좀 들려 달라고 했어요. 그가 마지못해 피아노를 연주하는데 첫 멜로디가 내 심장을 쳤죠. 그 노래가 소녀입니다. 나한테 곡을 줄 수 있느냐고 묻자, 자기는 아마추어여서 히트도 안 될 거라며 겸연쩍어했어요. (이문세) 1977년 데뷔한 이문세는 1집과 2집을 냈지만 가수보다는 라디오 DJ로서 이름을 얻고 있던 시절이었다. 두 사람은 곧 의기투합해 서울 수유리 자취방에서 밤을 새우며 작업했다. 6개월 동안 8곡을 완성한 이영훈은 쉬운 노래를 하나 만들어 보겠다고 하더니 30분 만에 한 곡을 만들었다. 그 곡이 바로 3집 앨범(1985년)의 대표곡으로 큰 사랑을 받고 이영훈의 이름을 음악계에 처음 알린 난 아직도 모르잖아요다. 이영훈의 위대함은 작곡 이상으로 작사에 있다. 그는 시적 감성이 풍부한 뮤지션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사에 공을 많이 들였다. 노랫말 짓기가 선율 만들어내는 것보다 50배는 어려웠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격이 있는 가사를 썼다. 눈물, 한숨, 허무, 자기연민, 감정 과잉을 걸러내고 담담하게 사랑과 이별, 상실과 그리움의 정서를 담아냈다. 시적이면서도 회화적이었다. 그의 노랫말을 따라 부르다 보면 한 폭의 풍경화 속 주인공 같은 느낌이 든다. 광화문 연가와 같은 5집 앨범(1988년)에 실린 시를 위한 시에는 이런 아름다운 가사가 있다. 내가 눈 감고 강물이 되면 그대의 꽃잎도 띄울게/내가 눈 감고 바람이 되면 그대의 별들도 띄울게 또다시 읊고 싶은 노랫말들이 많다. 라일락 꽃향기 맡으면/잊을 수 없는 기억에/햇살 가득 눈부신 슬픔 안고/버스 창가에 기대 우네//이렇게도 아름다운 세상/잊지 않으리, 내가 사랑한 얘기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저 타는 노을 붉은 노을처럼/난 너를 사랑하네/이 세상은 너뿐이야 소리쳐 부르지만/저 대답 없는 노을만 붉게 타는데 (붉은 노을) 혼자 걷다가 어두운 밤이 오면/그대 생각나 울며 걸어요/그대가 보내준 새하얀 꽃잎도/나의 눈물에 시들어 버려요/그대가 떠나가면 어디로 가는지/나는 알 수가 없잖아요 (난 아직 모르잖아요) 이대로 떠나야만 하는가/너는 무슨 말을 했던가/어떤 의미도 어떤 미소도/세월이 흩어가는 걸 (그녀의 웃음소리뿐) 작사가 김이나는 가장 좋아하는 가사로 옛사랑을 꼽은 적이 있다. 평단으로부터 시와 선율이 하나가 된 예술 작품이라고 평가받은 노래다. 이제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내 맘에 둘 거야/그대 생각이 나면 생각난 대로/내버려두듯이/흰 눈 나리면 들판에 서성이다/옛사랑 생각에 그 길 찾아가지/광화문 거리 흰 눈에 덮여가고/하얀 눈 하늘 높이 자꾸 올라가네 이영훈은 이 가사를 쓰고 난 후, 더는 하고 싶은 말이 없었다. 이 곡 이후에 쓴 내 노래의 가사들은 모두 별첨 정도일 뿐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클래식 악기와 작법이 가미된 한국적 팝 발라드(전편 광화문 연가 참조)를 만든 그의 손에서 나온 노랫말들은 노래 못지않게 클래식하다. 마치 피아노로 쓴 가사 같다. 거기에 이문세라는 보컬리스트의 독보적 음색과 기교를 절제한 창법이 덧입혀지면서 그 당시 팝에 비해 홀대받던 대중가요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것이다. 음악이란 인간의 가장 깨끗한 상태의 영감에서 이루어질 뿐이다. 논리와 방법이 만든 음악이 있다면 그것은 이미 쓰레기일 뿐이다. (생전 인터뷰) 생전의 이영훈. 그는 밤을 새워가며 피아노 앞에 앉아 작곡에 열중했다. (ⓒ나무위키) 이영훈은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이문세보다 한 살 어리다. 아버지는 그의 음악을 반대해 기타를 부숴버린 엄격한 교사였으나 어머니는 아들의 음악적 자질을 알고 피아노를 사줬다. 그 피아노로 중학생 때 나중에 히트곡이 된 사랑이 지나가면, 소녀를 작사·작곡했다고 한다. 그는 서라벌고를 졸업한 후 정규음악 수업을 받지 않고 독학으로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만들었다. 자신의 가사에 광화문이 자주 등장하는 것에 대해서는 제 감성의 출발은 광화문과 덕수궁입니다. 워낙 궁 같은 분위기를 좋아하니까 어릴 때부터 광화문 주변을 자주 찾았고 그곳에서 감성을 키웠어요라고 말했다. 이영훈-이문세는 한국 대중가요사상 서로에게 최고의 페르소나다. 1985년 정규 3집 앨범부터 중간에 잠시 헤어진 적은 있으나 17년 동안 함께 했다. 이문세의 거의 모든 히트곡은 이영훈 작사·작곡이다. 유족에 따르면 이영훈은 강박에 가까운 태도로 작곡했다. 종일 피아노 앞에만 앉아 커피 40잔, 담배 4갑을 피우며 밤을 새웠다고 한다. 그런 습관이 건강을 해쳤다. 이영훈이 암 판정을 받은 뒤에도 이문세는 그의 건강 상태가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이영훈은 마지막까지 자신의 상태를 어느 정도 감추었다고 한다. 마지막 순간, 이문세는 그의 손을 잡고 기도하며 배웅했다. 이영훈의 노래들은 30년이 흘렀어도 전혀 올드한 느낌이 없다. 라디오에서, 노래방에서, 노래 경연 프로그램에서 꾸준히 들리고 불린다. 수많은 후배 가수가 커버했고 리메이크했다. 그래서 그의 부재가 실감 나지 않는다. 그가 떠난 지 16년. 모든 게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해가고,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겠지만, 그는 여전히 좋은 노래를 사랑하는 이들 곁에 남아 있을 것이다. ◆ 한기봉 전 언론중재위원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를 했다. 파리특파원, 국제부장, 문화부장, 주간한국 편집장, 인터넷한국일보 대표, 한국온라인신문협회 회장을 지냈다.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초빙교수로 언론과 글쓰기를 강의했고, 언론중재위원과 신문윤리위원을 지냈다. hkb821072@naver.com 2024.03.28 한기봉 전 언론중재위원
- 의료개혁과 ‘K 바이오헬스 경쟁력’ 강화 김하일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 학과장 2025학년도 의대정원을 2000명 증원하는 정부의 발표가 있은지 한달이 훌쩍 지났다. 이번 의대정원 증원의 이유는 필수의료, 지역의료 등의 부분에서 부족한 의사인력의 공급을 늘리기 위해서다. 필수의료와 지역의료 인력의 부족이 당장 눈앞에 놓인 당면과제이긴 하지만, 의사양성에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을 생각하면 미래를 위한 준비도 지금 같이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바이오헬스 산업에서 국제경쟁력 확보는 우리나라의 미래 성장을 위해 꼭 필요하다. 승자독식 구조의 이 산업에서 우리나라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2% 이하이고 갈수록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 바이오헬스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회복하고, 바이오헬스 산업의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 의사과학자의 양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 사회는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도 이미 여러차례 의사과학자 양성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따라서 이번 의대정원의 증원 과정에서 단순히 의사의 수를 늘리는 것으로 끝내지 말고 의사과학자를 양성해 바이오헬스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몇가지 정책적 고려가 있어야 한다. 지난 25년 동안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의 37%, 글로벌 10대 제약사 책임자의 70%가 의사과학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30명 미만의 의사과학자가 배출되고 있지만 대부분이 병원에서 임상진료를 주로 하는 임상의학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전일제로연구개발에 집중하는 의사과학자는 1년에 10명도 배출되지 않고 있다. 신약개발이나 의료기술의 개발에 참여하는 연구개발 인력으로서 의사과학자의 수요는 갈수록 늘어나는데 비해 공급은 턱없이 부족하다. 따라서 연구개발인력으로 전일제 의사과학자를 더 많이 양성하기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 의사과학자 양성의 역량을 갖춘 대학에 별도의 정원을 배정하는 것도필요하다. 또 연구력이 우수한 과기특성화대학이 다양한 방식으로 의사과학자를 양성에 참여할 수 있는 정책도필요하다. 특히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한 별도의 병역특례 제도와 여성의사과학자의 양성을 위한 특별한 정책도 필요하다. 홈케어·재활·복지 전시회에서 고령친화재활·복지용품과 바이오헬스케어 제품들이 선보였다.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전일제 의사과학자의 양성은 연구개발 뿐만 아니라 기초의학 교원의 확보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지난 30년간 기초의학은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 지금과 같은 상태라면 15년쯤 뒤면 의학교육을 위한 최소한의 교원을 확보하기도 어려워진다. 이런 상황에서 기초의학을 교육할 수 있는 의사과학자의 공급이 늘지 않으면 의대 교육의 질도 지속적으로 나빠질 것이다. 학부과정 뿐만 아니라 대학원 교육의 질은 더 빠른 속도로 나빠지게 될 것이고, 이는 의학분야에서 연구력의 저하와 임상의료의 질적 저하로 이어질 것이다. 이런 악순환을 막기위해 이번에 증원되는 의대정원의 일부를 기초의학 교육과 연구가 가능한 의사과학자의 양성에 활용할 필요가 있다. 바이오 분야에서 활동하는 의사과학자 뿐만 아니라 의료기기, 의료로봇, 의료반도체, 의료AI, 의료소재 등 의학의 공학적 적용분야에서 활동할 의사공학자의 양성을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여러 선진국에서는 이미 공학기반의 의대를 설립해 의사공학자의 양성에 힘을 기울이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시작도 하지 못하고 있다. 과기정통부에서 의사공학자 양성을 위한 과학기술의학전문대학원의 설립을 추진한다고 발표했지만 이번 의대정원 논의과정에서는 배제되어 있다. 더 늦어지면 국가경쟁력 도약을 위한 기회를 잃게 될 것이다. 이번 기회에 공학기반의 과학기술의학전문대학원의 설립을 위한 정원의 배정에 대하여 관계부처 간의 긴밀한 협의를 시작해야 한다. 의사과학자로의 진로로 신규 유입을 늘릴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의사과학자의 양성을 위한 어떤 노력을 해도 이 분야로 신규 유입이 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임상의사 양성위주의 획일적인 의대 교육은 입학당시 의사과학자를 꿈꾸던 학생마저 그 꿈을 포기하게 만들고 있다. 의사과학자로의 유입을 늘리기 위해서 기존의 임상중심의 교육을 탈피한 새로운 교육과정의 도입이 필요하다. 미국은 1964년부터 국립보건원(NIH) 주도로 MSTP(Medical Scientist Training Program)라는 이름의 MD-PhD 복학학위과정을 도입하여 전국적으로 의사과학자를 양성하기 시작하였다. 이번 기회에 우리도 역량을 가진 대학부터 국가 주도의 MD-PhD 복학학위과정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해 기존의 의대교육과는 다른 혁신적인 교육과정을도입해야 한다. 하버드의대는 기존의 의대교육과정과 별도로 MIT와 공동으로 운영하는 HST (Health Science and Technology) 프로그램을 1971년부터 시작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최근 서울의대가 의과학과를 신설하여 의사과학자를 양성하겠다고 나선 것은 바람직한 변화이다. 하지만 과거처럼 선언만 하고 실제 교육의 혁신이 없다면 또 실패할 것이다. 임상중심의 획일적인 교육을 벗어나 새로운 교육과정을 도입하려는 혁신적인 시도가 있기를 기대한다. 하버드-MIT의 HST 프로그램처럼 이공계 대학과 의대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새로운 의학교육 과정의 도입도 적극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이런 공동운영 프로그램은 교원과 교육시설 부족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면서 혁신적인 교육 개혁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의대정원의 증원에 대학입시와 이공계 교육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사회적 우려를 해소하면서 다양한 의사의 양성을 위해 미국식 의전원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2006년 도입되었지만 교육의 개혁없이 임상위주의 의대 교육을 그대로 하였고, 시작한지 2년 만에 의과대학으로 회귀를 선언하면서 실패한 제도로 인식되었다. 특히 의전원 졸업생이 더 많이 개원한다는 오해를 받았다. 하지만 의전원을 중단하고 의대체제로 돌아간 지 15년이 지난 지금 개원가로의 진출은 과거보다 더 심해졌다. 여전히 의전원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차의전원은 안정적으로 잘 운영되고 있다. 의전원때문에 이공계 대학원이 황폐화 되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이제 냉정하게 돌아보고 우리 환경에 맞는 의전원 제도를 다시 검토해야한다. 의전원제도를 통해 학생 선발의 다양성을 준다면 전혀 다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의대정원의 증원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그만큼 어떻게 해야 필수의료와 지역의료를 살리는 방법이 될지, 또 미래를 준비하는 의사과학자를 양성할 수 있을 지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한다. 학생의 선발과 교육을 포함한 다양한 이슈를 신중하게 검토하고 더 안전하고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한 기회로 만들기를 기대한다. 2024.03.25 김하일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 학과장
- 메시지를 담아 사회에 외치는 힙합 다큐멘터리 힙합은 음악이지만 동시에 문화이고 라이프스타일이다. 그리고 힙합의 이러한 면모를 이해하기에는 영상 콘텐츠가 더없이 안성맞춤이다. 이미 지난 세월 동안 많은 영화 및 다큐멘터리가 세상에 나왔다. 그 작품들은 힙합의 뿌리와 맞닿은 흑인역사에 대해 알려주기도 했고 힙합에 잠재된 코드와 가능성에 대해 설명해주기도 했다. 힙합 영화와 힙합 다큐멘터리는 나에게 마치 교과서 같았다. 이번에는 메시지를 담아 사회에 외치는 힙합 다큐멘터리를 골라봤다. 굳이 정색하면서까지 볼 필요는 없지만 의미 있는 화두를 던지며 함께 생각해볼 것을 촉구하는 작품들이다. 배드랩(왼쪽)과 마이마이크사운드나이스 포스터 (사진=기고자 제공) ◆ 배드랩(Bad Rap, 2016) 다큐멘터리 배드랩은 아주 간단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왜 아직 미국힙합 씬에서는 아시아계 랩스타가 나오지 않았을까? 백인 래퍼들에게는 에미넴(Eminem)이 있고 라티노힙합 씬에는 빅펀(Big Pun)이 존재한다. 하지만 (당시 기준으로) 아시아계 랩스타를 꼽으라고 한다면? 음. 대답하기가 조금 곤란하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살리마코로마(Salima Koroma, 감독)와 한국계 미국인 재키조(Jaeki Cho, 제작자)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직접 이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그들은 네 명의 아시아계 래퍼 덤파운데드(Dumbfoundead), 아콰피나(Awkwafina), 렉스티지(Rekstizzy), 리릭스(Lyricks)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뒤 미국에서 아시아계 래퍼로 살아간다는 것을 다채롭게 조명했다. 흥미로운 건 이 작품이 세상에 나온 뒤로 양상이 어느 정도 달라졌다는 점이다. 2024년을 기준으로 생각해본다면 아시아계 래퍼들의 입지는 이 작품이 개봉했던 시기와는 많이 달라졌다. 더 나아가 아시아를 기반으로 한 음악과 엔터테인먼트의 위력이 그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고 커졌다. 다행이라고 말해도 되려나. ◆ 마이마이크사운드나이스(My Mic Sounds Nice: The Truth About Women and Hip Hop, 2010) 영화 셀마(Selma)는 마틴루터킹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마틴루터킹의 삶 중에서도 셀마 행진을 중심으로 제작됐다. 그리고 이 영화의 감독 에바두버네이(Ava DuVernay)는 셀마를 만들기 몇 년 전에 힙합 다큐멘터리를 만든 적이 있다. 마이마이크사운드나이스는 여성 감독 에바두버네이가 여성 힙합아티스트들을 조명한 다큐멘터리다. 이 작품은 힙합 업계에 있는 여성 래퍼, 동료, 관계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엠씨라이트(MC Lyte), 미씨엘리엇(Missy Elliott), 이브(Eve) 등 존재감이 큰 여성래퍼들이 출연해 자신들의 커리어를 비롯하여 남성우월주의, 여성 비하 및 상품화 등에 대한 이슈를 논한다. 1980년대부터 시작해 2010년까지 힙합 내의 여성의 위치는 어떻게 변화했는가? 여성 힙합 아티스트의 경험담과 생각을 들을 수 있는 흔치 않은 다큐멘터리다. 월라이터스(왼쪽)와 업라이징 포스터 (사진=기고자 제공) ◆ 월라이터스(Wall Writers, 2016) 그래피티의 근원지는 뉴욕인가 필라델피아인가? 이 작품은 1970년대에서 1980년대 중반까지 길거리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던 그래피티라이터 타키183(Taki 183), 콘브레드(Cornbread), 록키184(Rocky184) 등과의 인터뷰를 담고 있다. 그들은 왜 그래피티에 빠져들었을까? 우리가 알지 못한 과거의 생생한 일화는 덤이다. 이 작품은 2016년에 미국에서 개봉했으며 그래피티의 과거와 오늘을 온전하게 펼쳐냈다. 감독 로버트가스만(Robert Gastman)이 직접 집필한 동명의 책 월라이터스를 기반으로 한 다큐멘터리다. ◆ 업라이징 : 힙합과 LA 폭동(Uprising: Hip Hop and the L.A. Riots, 2012) 힙합과 LA 폭동의 관계성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1991년, 네 명의 백인 경찰은 과속을 했다는 이유로 LA 주민이자 흑인인 로드니킹(Rodney King)을 체포하고 폭력을 행사한다. 이 영상은 전 세계에 공개되었지만 그들은 결국 무죄 판결을 받는다. 하지만 이 부당한 판결에 대한 반발로 폭동이 일어난다. LA 사우스센트럴에서 시작된 이 6일간의 폭동이 미국 사회, 문화, 그리고 힙합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이 작품은 이야기한다. 힙합아티스트 아이스큐브(Ice Cube), 아이스티(Ice-T), 커럽트(Kurupt) 등이 출연해 자신의 의견을 밝히고 있고 경찰 측에서도 출연했다. 무엇보다 이 사건의 당사자인 로드니킹이 직접 출연해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래퍼 스눕독(Snoop Dogg)이 직접 내레이션에 참여했다. ◆ 김봉현 음악저널리스트/작가 힙합에 관해 책을 쓰고 강의를 하고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케이팝 아이돌 연습생들에게 음악과 예술에 대해 가르치고 있고, 최근에는 제이팝 아티스트들과 교류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한국힙합 에볼루션, 힙합의 시학 등이 있다. murdamuzik@naver.com 2024.03.22 김봉현 음악저널리스트·작가
- 변화하는 병역판정검사로 공정 병역을 이끌어가다 이기식 병무청장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다. 병무청에서 병역판정검사를 진행하면서 지난 10년 동안 대한민국 청년들의 신체질량 지수(BMI)를 통해 건강상태 변화를 분석해 보았더니 의미 있는 결과가 나왔다. 평균 신장은 10년 전에 비해 0.6cm 증가한 174.3cm이었고, 평균 체중은 4.6kg 증가한 73.1kg으로 증가폭이 훨씬 컸다. 식습관의 변화와 운동량 감소가 원인이 되어 과체중과 비만의 범위에 있는 사람이 많아졌고, 이것은 비만과 상관성이 높은 당뇨병으로 4~5급 처분받은 인원이 10년 전보다 2.7배 높아진 결과로 이어졌다. 지난 10년간 청년들의 건강 상태가 시대 흐름에 따라 변화해 온 것처럼, 병무청의 병역판정검사도 시대적 요구를 반영하여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먼저 의료검사장비의 변천사를 살펴보면 1999년도에 컴퓨터단층촬영(CT) 장비를 도입하였고, 2002년도에는 중앙병역판정검사소에 최초로 자기공명영상(MRI) 장비가 도입되었다. 현재는 서울 등 9개 지방병무청에 MRI 장비가 설치되어 최신 의료장비로 정밀한 병역판정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올해 질량분석기를 신규로 도입하여 하반기부터는 질병 치료를 위한 약물 복용 여부를 확인하는 등 뇌전증 위장과 같은 병역면탈에 대한 예방활동이 강화된다. 다음은 청년들의 정신건강 분야에 대한 변화 내용이다. 2007년도에 도입된 심리검사는 많은 발전을 거듭해 현재 271문항 인성검사와 89문항 인지능력검사를 통해 군 복무 부적합자를 사전선별하고, 심리검사 자료를 입영 시 군부대에 제공하여 군(軍) 인사관리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에 더해 병무청은 최근 범정부 차원에서 추진 예정인 정신건강정책 혁신방안과 연계하여 정신건강서비스 지원을 강화할 계획이다. 병역의무자 중 심리취약자나 정신건강의학과 치료가 필요한 정신건강관리 대상을 기존 정신과 5급~7급 대상에서 정신과 4급 대상까지 확대하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청년들의 정신건강 문제를 조기에 발견하여 관리할 수 있도록 보건복지부와 협업하고,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를 통해 신속한 상담 및 치료를 연계하여 청년들의 정신건강서비스 지원을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병역판정 신체검사 등 검사규칙」도 진단 및 치료기술의 발달 등 최신 의료환경의 변화를 꾸준히 반영해 개정하고 있다. 올해 2월부터는 군 복무가 가능하다고 판단되는 일부 질환(편평족, 난시)과 BMI 등에 대해서 현역 판정기준을 조정하였고, 정신건강의학과에 대해서는 현역 판정기준을 엄격히 하여 군의 지휘·관리 부담을 줄이고 사건·사고를 예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번 검사규칙 개정으로 인해 보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신체등급 판정기준을 마련함으로써 병역판정의 공정성과 형평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이와 함께 올해 하반기부터는 입영대상자 전원에 대해 마약류 검사를 실시한다. 기존에 선별적으로 실시하던 필로폰, 코카인, 아편, 대마초, 엑스터시 5종 검사항목에 사회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케타민 등을 추가하여 검사한 뒤 그 결과를 국방부와 공유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마약류 오·남용으로 인한 군내 사고를 사전에 차단하고 군 장병들의 복무 관리에도 크게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그동안 병역판정검사에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그중 두드러진 큰 변화는 병역판정검사가 병역판정 기능을 뛰어넘어 병역의무자에게 종합검진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청년 건강 증진에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1994년 처음 실시된 병리검사는 검사항목을 점진적으로 확대하여 현재는 간기능, 신장기능 등 총 30종의 검사를 실시함으로써 포괄적인 건강상태를 확인하여 질병 예방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요즘 같은 상전벽해의 시기에 모든 게 변해도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는 것처럼, 공정한 병역의무 이행에 대한 국민의 기대치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병무청은 정밀한 병역판정검사로 변화하는 시대에 능동적으로 대응함과 동시에, 공정한 병역의무 이행을 위한 첫걸음이 값진 발걸음이 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발전할 것이다. 2024.03.21 이기식 병무청장
- “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이루어진 사랑은 사진으로 남고, 이루지 못한 사랑은 노래로 남는가. 길을 걷다 우연히 들려오는 노래에 누군가가 오버랩된다면, 그 사랑은 미완이거나 미결이다. 사랑에 종결은 없다. 사랑은 백신이 부재하는 종신형이다. 사랑이 신비로운 건 결국은 혼자만의 것이기 때문이다. 너의 사랑은 끝났지만 나의 사랑은 시작되기도 한다. 그런 노래가 바로 이 노래다. 이제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해갔지만 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 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 향긋한 오월의 꽃향기가 가슴 깊이 그리워지면 눈 내린 광화문 네거리 이곳에 이렇게 다시 찾아와요(1988년 이영훈 작사·작곡, 이문세 5집) 우리 젊은 봄날, 손을 잡고 그 길을 걸어야 사랑은 비로소 시작되는 것 같았다. 그 길은 그런 길이었다. 오월의 진한 라일락 향기처럼 그 사랑은 백리향 천리향 만리향인 줄 알았다. 그러나 너는 떠나갔다. 세월이 흘렀다. 나는 오늘 눈 덮인 그 길을 걷는다. 두 손 잡고 언약하던 언덕 밑 조그만 교회당은 그 자리에 있다. 슬며시 팔짱 끼어도 짐짓 모른 척 걷던 고궁의 돌담길도 색깔이 변했지만 그대로다. 문득 향긋한 꽃향기가 가슴 속에 훅 밀려온다. 어디선가 네가 서서 날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다. 자꾸 뒤를 돌아본다. 너는 어디에 있는가. 광화문 연가는 꿈에서 깨어난 순간 사라진 장면 같은, 그런 사랑의 후일담이다. 노랫말에 이별이란 단어는 없다. 많은 청춘이 그곳에서 기다렸고 사랑을 했고 이별을 했다. 그러므로 우리가 홀로 그곳을 다시 찾을 때 사랑과 이별은 또 한 번 시작되는 거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과 아직도 남아 있는 것, 새로 생긴 것들이 공존하는 정동길. 저기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도 언젠가는 세월을 따라 떠나갈 것이다. 덕수궁 돌담길에 기대 웨딩 사진을 찍는 저 연인들의 앨범도 언젠가는 빛이 바랠 것이다. 노래는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에 나왔다. 그때의 청춘은 50대 후반이 되었다. 60대에게 낭만에 대하여가 있다면 50대에겐 광화문 연가가 있다. 전자는 그저 다시 못 올 것에 대한 비탄과 공허이지만, 광화문 연가에는 세월을 관조하는 정서와 미학이 있다. 노래방 50대 애창곡 목록에서 이 노래가 빠지지 않는 건 사라진 것의 애틋함과 여전히 남은 것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게 꼭 사랑이 아니면 어떠랴. 이문세-이영훈(작사·작곡)은 광화문 연가 3년 후 마치 이 노래 후렴인 듯한 옛사랑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이제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내 맘에 둘 거야/그대 생각이 나면 생각난 대로/내버려두듯이/흰 눈 나리면 들판에 서성이다/옛사랑 생각에 그 길 찾아가지/광화문 거리 흰 눈에 덮여가고/하얀 눈 하늘 높이 자꾸 올라가네 대중가요가 사랑과 이별을 먹고 자라지만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생각이 나면 생각난 대로처럼 의연한 구절이 어디 또 있을까. 이제는 그만 초탈하고 싶은 것일까. 이 노래 제목이 광화문 연가가 아니고 정동길에서나 정동 연가였다면 시대를 초월해 이토록 사랑받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연가(戀歌)는 통상 엘레지라 부르는 비가(悲歌)와 또 다른 느낌을 준다. 한 걸음 떨어져 슬픔을 누르고 담담하게 그리워하는 노래다. 광화문(光化門)은 행정구역이나 지명은 아니다. 조선 왕조가 막 열린 1395년 경복궁의 남쪽에 세운 정문의 이름이다. 1592년 임진왜란 때 파괴된 것을 1865년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 복원했다. 우리는 그냥 그 일대를 광화문이라고 부른다. 도로 원표도 여기서 시작한다. 대한민국의 중심이고 상징이고 한국인에겐 정신적 고향 같은 곳이다. 서정주 선생은 시 광화문에서 광화문은 차라리 한 채의 소슬한 종교라고 했다. 강남이 발달하기 전 광화문 일대와 종로통은 젊음과 문화의 거리였다. 서울고, 경기여고 등 많은 남녀 명문고가 광화문 네거리를 중심으로 빙 둘러쌌다. 기성세대에게는 젊은 날의 흑백 앨범 같은 곳이다. 이영훈은 한 인터뷰에서 어릴 때부터 광화문과 덕수궁을 무척 좋아해 자주 다녔고 그게 내 정서가 됐다고 말했다. 80년대 중후반 가요계 변방에 있던 이영훈(1960~2008)은 신촌블루스 엄인호의 소개로 작곡가를 찾던 한 살 많은 이문세를 처음 만났다. 이영훈은 클래식 현악기가 가미된 세련된 멜로디에 시적 가사를 입힌 고품격의 노래들을 만들어 이문세에게 주었다. 처음 참여한 이문세 3집(1985년)부터 4집(1987년), 5집(1988년)까지 3년간 지금도 명반 3부작으로 추앙받는 한국 대중가요계의 기념비적 음반이 세상에 나온 것이다. 세 음반은 연속 골든디스크상을 받았다. (다음 편에 이영훈 별도) 7집(1991년)의 옛사랑과 함께 이문세를 대표하는 광화문 연가는 5집에 실렸다. 한 음반에서 대체로 히트곡이 하나만 나오던 시절에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붉은 노을 시를 위한 시 등 음반 수록곡 대다수가 크게 히트했다. 5집은 선주문만 수십만 장에 260만 장이 팔렸다. 세 앨범의 상업적 성공은 대단해 3집 난 아직 모르잖아요는 150만 장, 4집 사랑이 지나가면은 280만 장 이상 팔렸다. 광화문 연가가 수록된 이문세 정규 5집 앨범 표지.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붉은 노을 등 대다수 곡이 히트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이문세와 이영훈, 이영훈과 이문세를 평가할 때 결코 놓쳐선 안 되는 게 있다. 두 사람은 사실상 최초로 한국적 발라드를 음악 대중에 이식한 위대한 뮤지션이다. 포크도 아니고 종전의 발라드와도 다른 이 음악을 평론가들은 그렇게 명명했다. 두 사람의 음악은 팝송에 비해 저평가를 받아온 대중가요에 대한 인식을 전환시킨 계기가 되었다. 대중은 곧바로 빠져들었다. 감수성을 충족할 가요가 부재해 허전하던 음악시장의 큰손 20대 30대 여성들에게는 단비였다. 심야의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에서 가요와 팝의 역전이 이뤄진 때가 바로 이때다. 한국적 발라드의 태동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유재하도 비슷한 시기에 등장했다. 광화문 연가 한 해 전인 1987년 첫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를 유작으로 남기고 그해 늦가을 거짓말처럼 교통사고로 홀연히 떠난 영원한 스물다섯 청년 유재하. 그도 발라드의 주소를 바꾼 뮤지션이다. 모든 곡을 작사·작곡·프로듀싱하고 클래식 기법과 악기를 사용했다는 점, 담백하면서도 단아하고 진정성이 느껴지는 음악이 서로 닮았다. 유재하는 한양대 작곡과를 막 졸업한 클래식 전공자였다. 당시 대중가요에는 발라드의 옷을 입었어도 뽕끼니 뽕삘이란 게 남아 있었다. 조용필도 그랬다. 이영훈의 고급한 선율을 배경으로 한 이문세의 창법은 트로트의 정서를 말끔히 씻어냈다. 툭툭 던지는 듯한 중저음대의 감미로운 창법, 뛰어난 해석력과 표현력, 대중 친화적 무대 매너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었다. 서로의 페르소나인 두 사람은 7집까지 전 곡을 함께 했고 9집에서 다시 만나 14집 빨간 내복(2002년)까지 17년 동안 초창기의 환호만큼은 아니었어도 어깨동무를 했다. 1990년대의 이문세와 이영훈. 두 사람은 서로의 페르소나였다.(ⓒ위키백과) 2008년 이영훈은 대장암 투병 끝에 47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문세는 이영훈의 손을 잡고 기도하며 임종을 지켰다. 그 1년 후 광화문 연가 노래비가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 정동제일교회 건너편에 세워졌다. 이영훈을 보낸 지 25년이 흐른 지금 이문세는 60대 중반(65세)의 미중년이 되었으나 여전한 현역이다. 그는 TV보다 22년간 라디오 음악프로그램 진행을 사랑했고 콘서트 무대를 고집해 왔다. 대중음악 공연을 하나의 브랜드로 만든 선구자다. 거의 해를 거르지 않고 새로운 컨셉과 빼어난 수준, 재미를 겸비한 전국 순회공연의 티켓 파워는 조용필, 임영웅과 맞먹는다. 잠실종합운동장에 빈자리가 없게 했다. 올해 3월 8일 전주에서 시작한 2024 Theatre 이문세 순회공연도 전 지역이 이미 매진됐다. 팬클럽 마굿간의 사랑도 그의 얼굴만큼이나 긴 세월 변함없이 이어져 오고 있다. 올해 3월 초부터 시작한 이문세의 전국 순회 콘서트 포스터. 그의 콘서트는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다. 거의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공연했다. (ⓒ팬클럽 마굿간) 대중성과 음악성, 시대를 초월한 정서를 두루 갖춘 이문세-이영훈의 음악은 우리 가요계의 여전한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다. 대중음악 평론가 임진모는 K팝이라는 이름으로 글로벌 성공을 쾌척해 낸 우리 대중가요가 서구의 종속에서 벗어나 독립과 자유를 획득한 서막을 이영훈과 이문세가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평가했다. ◆ 한기봉 전 언론중재위원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를 했다. 파리특파원, 국제부장, 문화부장, 주간한국 편집장, 인터넷한국일보 대표, 한국온라인신문협회 회장을 지냈다.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초빙교수로 언론과 글쓰기를 강의했고, 언론중재위원과 신문윤리위원을 지냈다. hkb821072@naver.com 2024.03.19 한기봉 전 언론중재위원
- 아이들에게 비타민 같은 학교 박성환 송린초등학교 교사 현장에 답이 있다. 지난 겨울 늘봄학교를 준비하면서 학생·학부모와 의사소통하며 경험한 사례를 통해 늘봄학교의 긍정적인 효과와 전망을 풀어내고자 한다. #늘3. 학교에 찾아온 긍정적 변화 봄11. 정규교육과정을 보완하고 지탱하는 비타민 체육은 정규교육과정에서 일주일에 세 시간 편성된다. 가장 많이 뛰어놀고 싶고 신체적 성장이 큰 초등학생 시기에 정규교육과정 체육 세 시간은 부족한 시간일 수 있다. 체육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아침늘봄 프로그램으로 놀이체육 프로그램을 편성했다. 정규수업이 시작되기 전 아침 체육 활동으로 학생들의 건강한 성장과 원활한 두뇌활동을 돕는다. 실제로 아침 체육 활동을 한 후 수업에 임하는 학생들의 경우 발표 횟수와 수업 참여도가 높아졌다는 담임 선생님들의 피드백도 있었다. 한편 제4차 산업혁명 시대로 접어든 만큼, 빠른 디지털 대전환에 대비하기 위해 1년 과정 중 1~2개 단원으로 구성돼 있는 정규교육과정 외에도 미래형·맞춤형 방과후학교로 보충해 정규교육과정을 지탱해줘야 한다. 송린초는 디지털·인공지능(AI) 에듀테크 프로그램으로 정규교육과정을 보완하고 있다. 과학 교과 내용을 세분화해 생명과학, 로봇과학, 드론항공 등 전문화된 융합·과학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처럼 방과후학교는 특기·적성 개발에서 나아가 정규교육과정과 상호 보완하고 지탱해주는 상생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지난 1월 24일 경기 화성 송린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방학 중 오후 돌봄프로그램에 참여해 책 읽기 활동을 하고 있다.(ⓒ문화체육관광부 국민소통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봄12. 놓치고 싶지 않아요. 함께 갈게요 초1 맞춤형 프로그램 수강 학생 중에는 2명의 특수학급 학생들도 있다. 그중 A학생은 케이팝과 댄스를 좋아해 바른체형성장댄스 수업을 신청했다. A학생 학부모는 아이가 가만히 있지 못하고 복도로 나와 돌아다니는 등의 특성으로 프로그램이 시작되기도 전에 걱정이 크셨는지, 잘 적응하지 못할 경우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 주지 않게 조치하겠다는 말씀을 전하셨다. 첫 주 수업이 진행되고 어머님이 우려했던 바와 같이, 자녀가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자 프로그램 중단을 고민하셨다. 그리고 그때 프로그램 강사는 A학생을 놓치고 싶지 않고 함께 가고 싶다며 학생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적잖은 감동을 느낀 순간이었다. 다수의 복지관 수업도 진행했고 특수아동에 대한 석사 논문을 작성한 경험도 있어 특수 아동에 대한 이해도가 깊다고 강사는 자신했다. 교사로서 한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마음을 한 번 더 일깨우게 된 계기였다. 봄13. 유치원 교사의 새 출발 초1 맞춤형 정서창의놀이 강사와의 인연은 지난해 방과후연계형 돌봄교실 자원봉사자로 만나며 시작됐다. 강사는 유치원 교사로 재직하다 전업주부로 자녀 양육에 집중했고 이후 본교 자원봉사로 다시 교육의 현장을 찾아 봉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올해 초1 맞춤형 정서창의놀이 강사로 인연이 다시 이어졌다. 유치원 교사로서는 아니지만, 초1 맞춤형 프로그램 강사로서 교정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유치원 정교사 자격증을 보유한 강사가 초1 맞춤형 강사로 나서자 학부모도 큰 신뢰도를 보였다. 어머니에서 선생님으로, 경력 단절이 경력 이음으로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봄14. 마을이 하나가 되다 늘봄학교 맞춤형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으로 치어리딩 공연반이 운영됐다. 치어리딩 공연반은 스포츠클럽 축제와 지역 예술제 무대를 목표로 구슬땀을 흘렸다. 으슬으슬 추운 봄에 시작해 무더운 여름에도 아이들은 꿈을 키워갔다. 이러한 열정과 노력 끝에 지난 8월 경기도 대회에서 1등을 기록하며 경기도 대표 자격을 부여받았다. 마을이 조성된 6년간의 역사에서 큰 경사였다. 전국대회 출전을 온 마을이 축하했다. 주민센터에서도 함께 기뻐하고 현수막으로 화답해주셨다. 전국대회에서는 동장님과 지역 대표분들이 경기장을 찾아 격려해주시며 함께해주셨다. 학교의 작은 성과와 활동에 함께 온 마음을 다해주는 마을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지난 1월 24일 경기 화성 송린초등학교에서 늘봄 맞춤형 프로그램 치어리딩부 블루웨이브 수강 학생들이 지도를 받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국민소통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봄15. 꿈을 찾아가는 아이들 장래희망이 뭐니?,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니?모르겠어요, 돈 많은 백수요 꿈을 잃어버린 학생들을 자주 만날 수 있다. 하지만 늘봄학교를 통해 자신의 소질을 찾고 심화해 나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지난 1년 동안 관찰했다. 치어리딩 프로그램을 통해 표현 활동에 대한 소질을 찾아 리듬체조 특기자의 길을 걸어가는 학생이 탄생했다. 뮤지컬·연극 배우의 길을 걸어가는 학생도 배출됐다. 방과후학교의 다양한 과학 프로그램을 수강하는 학생은 미래의 과학자를 꿈꾼다. 늘봄학교와 방과후학교는 흡사 대학교 전공의 축소 버전이다. 학생들은 전문화되고 세밀화된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을 통해 미래의 전공을 조기에 체험하면서 자신의 재능을 찾아가고 있다. 봄16. 할 수 있습니다 아침 체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학생에게 3㎞ 마라톤 대회의 참가 여부를 물었다. 어른들도 쉬지 않고 달리기엔 힘든 3㎞임에도 학생과 학부모는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강한 의지를 바탕으로 해당 학생은 겨울방학에도 아파트 헬스장 러닝머신에서 매일같이 3㎞ 러닝 훈련을 하며 대회를 준비했다. 마라톤 대회 당일. 쟁쟁한 선수들 사이에서도 19번째로 당당하게 결승선을 골인했다. 등수를 떠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멋지게 승리하고 결승선을 통과한 학생을 꼭 안아주었다. 경기도 케이팝 댄스대회가 열렸다. 방과후학교 방송 댄스 참여 학생들은 대회 참가 전까지의 모든 준비과정을 자율적으로 해야 함에도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스스로 안무, 음악, 의상을 준비했다. 이러한 자신감과 도전 정신은 실력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학생들은 케이팝 대회에서 당당하게 초등부 1위를 달성했다. ▶ 늘봄학교를 준비하며 겪은 20가지 이야기 1편 바로 가기 #늘4. 늘봄학교 담당자로서 살아가는 삶 봄17. 맨땅에 헤딩 2021년 코로나19로 일상이 멈췄던 시기. 처음 방과후부장을 맡아 중단됐던 방과후학교를 시작하기 위해 방역복을 입고 소독기를 들었다. 프로그램 준비부터 강사 관리, 방과후 교실 관리까지 맨땅에 헤딩하던 경험은 지금 송린초 늘봄학교의 초석이 됐다. 같은 학교에서 4년째 방과후학교 업무를 총괄하면서 매년 공동체의 의견을 수렴해 더욱 단단히 만들어 나갔다. 지자체, 종목 단체의 교육지원사업을 유치해 무료 방과후수업을 제공하는 등 교육 복지에도 힘썼다. 학생들이 실제 방과 후에 다니는 학원의 갯수, 유형을 분석해 방과후학교 프로그램 개설에 참고했다. 고학년 학생들의 수요도 늘리기 위해 한국사 자격증반, 웹툰 등 성장 단계를 고려한 프로그램을 구성하고자 했다. 물론, 많이 기피하는 업무지만, 방과후학교 업무는 열심히 살게 하고 학생과 학부모에게 다가가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 봄18. 약속 시공간을 구분하지 않고 학생들이 있는 어디든 함께하는 교사가 되겠습니다 임용고시 2차 심층 면접에서 발언한 자신의 공약이었다. 이후 교사로 임용됐고 약속을 지키기 위해 힘든 일, 쉬운 일 가리지 않고 임했다. 초임 시절 방과후에 운동장에 남아있는 학생들과 함께 축구하고 캐치볼을 하며 멘토가 됐고 이후에는 스포츠클럽 지도교사, 대회 인솔 교사를 자처하며 정규교육과정 외에도 학생들과 함께했다. 교사가 되기 위해 수능과 임용고시를 위해 5번의 도전을 했고 힘들 때마다 절실했던 수험생과 고시생 시절을 떠올리곤 한다. 늘봄학교 담당자로서 올해도 시공간을 구분하지 않고 학생들이 있는 어디든 함께하는 교사가 되고자 한다. 봄19. 네트워크 방과후학교 업무를 맡았던 첫해, 뜬금없이 경기도교육청 장학사님께 연락을 드렸다. 방과후학교 지원단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방과후학교에 대해 더 배우고 싶고 컨설팅도 하고 싶습니다 이후 방과후학교 지원단으로 활동하게 됐고 인근 학교 방과후학교를 컨설팅하면서 방과후학교 운영 노하우를 전하고 있다. 방과후 보직교사로서 방과후학교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학교, 교사를 대상으로 계획을 공유하고 컨설팅하는 등 든든한 지원군이 되고자 한다. 교사로서 그리고 담당자로서 오늘도 연구하고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봄20. 남산 위의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학교 안에서 늘봄학교 담당자는 외로울 때가 많다. 때로는 아무도 없는 학교에 홀로 남아 업무 후에 학부모와 상담하거나 내일의 수업을 위해 교재를 연구한다. 늘봄학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하지만 늘봄학교를 맡은 담당자로서 담대히 나아가야 한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늘봄학교 담당자가 안정적으로 업무에 몰두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조성됐으면 한다. 늘봄학교 담당자도, 늘봄학교도 남산 위의 저 소나무처럼 오래도록 빛을 잃지 않고 우뚝 섰으면 한다. 2024.03.18 박성환 송린초등학교 교사
-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클래식 어느새 봄 내음이 공기 속에서 느껴지는 3월이다. 아직은 쌀쌀하고 눈도 종종 내리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나태주 시인의 말을 빌리자면 3월의 눈은 속삭이는 눈이다. 오면서 물이 되고 어린 가지에 눈물이 되어 이제 늬들 차례라고 말하는 속삭이는 눈인 것이다. 겨우내 움츠리고 있던 새싹들이 고개를 내미는 3월은 시작이라는 단어와 잘 어울린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달이기도 하며 개학과 개강 등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어 주는 달이기도 하다. 시작이란 무엇인가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으로 3월의 어원과도 일치한다. 3월이라는 뜻의 영어 March가 행진이라는 뜻 또한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March는 그리스 신화에서 전쟁과 농업의 신(Mars)로부터 유래하였다. 봄이 와서 날씨가 풀리게 되면 비로서 무기를 재정비하고 훈련을 시작했으며, 한해 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파종 또한 하기 때문이다. 즉 Mars가 내포한 의미로부터 시작을 알리고 행진 하다라는 March가 파생된 것이다. 앞으로 나아가는 행진곡은 이런 의미로 3월과 어울린다. 행진곡이 아니어도 많은 작곡가들이 시작과 출발을 의미하는 여러 작품들을 남겼다. 어떠한 작품들이 우리에게 밝고 희망찬 에너지를 던져주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경기 수원시 팔달구 수원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수원시립교향악단의 찾아가는 연주회 봄을 부르는 미술관 공연에서 시민들이 클래식 음악을 감상하고 있다.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브람스 - 대학축전 서곡(Akademische Festouverture) 완벽주의자적 성향을 지닌 브람스는 100편이 넘는 작품을 남겼다. 하지만 그 중 각각 4개의 교향곡과 협주곡을 포함한 관현악곡들은 손에 꼽을 정도다. 브람스는 총 2개의 연주회용 서곡을 남기고 있는데 하나는 비극적 서곡(Tragische Ouverture)이고 다른 하나는 대학 축전서곡(Akademische Festouverture)이다. 두 작품 모두 그의 나이 46세인 1880년에 쓰여졌으며 서로 다른 성격의 작품이다. 대학축전 서곡은 브람스가 폴란드의 브레슬라우 대학 철학부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고 이에 감사하는 의미로 작곡되었다. 사실 브람스는 캠브리지 대학에서도 박사학위 수여를 요청 받았으나 형식적인 수여식과 영국에 대해 큰 호감을 갖지 못하여 거절한 바 있다. 하지만 브레슬라우 대학의 요청은 받아들여 학위를 받기로 하였고 답례로 음표를 그려 보내주었는데 이에 대학 측에서 더 큰 반응의 표시로 관현악작품을 의뢰한 것이다. 대학 축전서곡은 전체 4개의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가 20대에 독일 괴팅겐에서 대학시절을 보낼 무렵 익힌 4곡의 학생노래를 주제에 엮어서 작곡 되었다. 제1곡은 우리들은 훌륭한 학사를 세웠다, 두번째 곡은 국가의 아버지, 세번째는 신입생의 노래 마지막은 기쁨의 노래로 이루어져있다. 브람스는 곡이 완성되자 4성부의 피아노 곡으로 편곡하여 자신이 존경하고 사랑했던 스승의 아내 클라라 슈만에게 헌정하였다. 작품의 초연은 완성된 이듬해 1881년 브람스가 직접 브레슬라우 대학을 방문하여 같은 해 작곡된 그의 비극적 서곡과 함께 연주 되었다. ◆ 헨델 - 왕궁의 불꽃놀이 음악(Suite HWV 351) 1740년부터 8년동안 유럽의 강대국들은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가 왕위계승 문제로 전쟁을 치렀다. 마침내 아헨조약으로 전쟁이 종결되자 영국의 조지2세는 이를 축하하기 위해 런던 그린파크에 대규모 불꽃놀이를 계획하였다. 그리고 헨델에게 화려한 불꽃축제에 어울리는 당시로는 대편성의 곡을 작곡하게 하였는데 바로 이렇게 탄생한 음악이 왕궁의 불꽃놀이 음악(Music for the Royal Fireworks) 모음곡집이다. 왕궁의 불꽃놀이 음악은 전체 5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있으며 맨 처음 서곡을 제외하면 나머지 악장들의 길이는 짧은 편이다. 야외무대를 생각하며 작곡되었기 때문에 대규모 편성으로 연주되며, 1곡은 서곡(Overture)이며 두 번째 곡은 프랑스의 빠른 춤곡인 부레(Bourree), 세번째는 시칠리아 섬의 무곡 Largo alla Siciliana, 네번째 알레그로(Allegro), 마지막은 3박자의 춤곡 미뉴에트(Minuet)로 구성되었다. 작품은 전반적으로 밝고 신나며 바로크시대 관악기의 웅장함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이날 축제는 첫 곡을 연주하고 101발의 캐논포가 울려 퍼진 뒤 불꽃놀이가 예정되었으나 그만 불꽃이 다른 곳으로 옮겨 붙어 화재가 발생하는 소동이 있었다. 하지만 작품은 성공적이었으며 헨델은 이후 현악기를 좀더 추가하는 수정을 하였고, 개정된 작품은 그 해 5월 런던의 자선음악회에서 공개되었다. 이 작품이 초연되고 3년뒤에 헨델은 눈 수술의 여파로 장님이 되어 더 이상 작곡활동을 하지 못하였으니 왕국의 불꽃놀이 모음곡은 그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한 음악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 엘가 - 위풍당당 행진곡 1번(Pomp and Circumstances. 1) 영국의 대표적인 음악축제 더 프롬스(The Proms)는 공영방송사인 BBC가 주최가 되어 매년 열리는 세계적인 음악축제이다. 두 달 동안 열리는 음악축제의 메인 공연장은 빅토리아 여왕이 남편 알버트공에게 헌사한 런던도심의 로열 알버트홀로 돔 형태의 지붕과 5000석이 넘는 좌석과 규모를 자랑한다. 전 세계에 중계되는 더 프롬스의 마지막 공연은 더 프롬스의 마지막 밤(The Last Night of the Proms)이라는 타이틀로 열리는데 전통적으로 항상 엘가의 위풍당당행진곡 1번이 연주된다. 이 작품을 들으며 영국인들은 벅차 오르는 감정을 느끼며 따라 부르기도 하고 앙코르를 요청하기도 한다. 영국인들에게 두 번째 국가와도 같은 이 작품은 사실 가사가 원래부터 있었던 곡이 아니고 주제 멜로디에 고취된 에드워드7세가 곡에 가사를 붙이라고 지시하면서 희망과 영광의 나라라는 제목을 갖게 되었다. 작곡가 에드워드 엘가는 1901년 영국 국왕 에드워드 7세의 대관식을 위해 6개의 위풍당당 행진곡을 작곡했는데, 그 중 1번이 가장 사랑 받는 곡 이라 할 수 있겠다. 한국어 제목으로 위풍당당으로 불리는 Pomp and Circumstances은 직역하면 화려한 의식이라는 뜻이지만 이 용어 자체는 문학에서 가져왔다. 바로 영국이 자랑하는 작가 셰익스피어의 작품 오델로의 3막 3장 중 영광스러운 전쟁의 자부심과 위풍당당함과 화려한 의식(Pomp and Circumstances)과도 작별이다를 인용한 것이다. 위풍당당행진곡 1번은 프롬스 콘서트에서 매년 공식적으로 연주되지만 이외 각종 시상식과 졸업식, 귀빈의 연회 등 축하와 환영을 뜻하는 자리에서 자주 연주되고 있다. 엘가는 이 작품 이후 공로훈장과 빅토리아 훈장 등을 받았으며, 영국의 명예로운 음악가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 베르디 - Aida 中 Grand March(개선행진곡) 주세페 베르디는 푸치니 이전 이탈리아 오페라의 영광을 이끈 인물로 오페라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이다. 그의 역작 오페라 아이다는 홍해와 지중해를 잇는 수에즈 운하 개통을 기념하는 작품으로 이집트 국왕의 의뢰를 받아 작곡되었다. 이전 베르디의 작품들과는 스케일과 스토리에서 훨씬 규모가 커진 작품으로 초연은 이집트 카이로 극장에서 이루어졌다. 오페라 아이다는 프랑스의 이집트 연구가인 오귀스트 마리에트의 소설에서 영감을 받아 쓰여졌으며 고대 이집트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주인공인 이디오피아 공주 아이다와 이집트 장군 라다메스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은 초연 당시 엄청난 흥행을 거두었다. 당시 베르디가 직접 이집트 카이로에 와서 지휘해줄 것을 부탁 받았지만 배로 이동하는 것을 꺼려한 베르디 때문에 카이로에 있던 베이스주자가 대신 초연을 맡아 지휘했다. 베르디 본인은 이듬해 밀라노의 스칼라 극장에서 자신의 작품을 처음 지휘했으며 이 또한 엄청난 성공으로 그의 또 다른 흥행작 돈 카를로의 4배가 넘는 수익을 안겨주었다. 전체 4막 7장으로 이루어진 오페라 아이다는 특히 2막 2장에 등장하는 개선행진곡(Grand March 또는 Triumphal March로 불림)으로 유명하다. 전체 오페라를 관통하는 이 유명한 멜로디의 행진곡을 듣고 나면 이어지는 곡에서는 긴장감이 떨어질 정도로 임팩트가 강한 곡이라 할 수 있다. 이 곡을 연주할 때 베르디는 1미터가 넘는 6개의 아이다 트럼펫을 사용하도록 하였는데 곡의 이국적인 분위기를 강조하기 위해 공연 계약조항에 반드시 포함시켰다고 한다. 배르디는 오페라를 위한 악기를 찾던 중 루브르에 소장되어있는 벽화에서 기다란 관을 가진 악기를 보았는데 이것이 계기가 되어 아이다 트럼펫을 공연에 사용한 것이다. 하지만 베르디 사후 투탕카멘의 무덤 등 유적에서 발굴된 악기들은 50cm 내외의 비교적 짧은 관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멋진 금관의 연주가 일품인 개선행진곡은 올림픽 등 국가적 업적을 이룬 인물의 환영, 필리핀이나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졸업식 등에 쓰이고 있다. ☞ 음반추천 브람스의 대학 축전서곡은 리카르도 샤이(Riccardo Chailly)와 게반트 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음반이 에너지 넘친다. 올드 레코딩으로 부르노 발터(Bruno Walter)와 콜럼비아 오케스트라의 연주,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과 빈 필하모닉의 연주 또한 선호한다. 헨델의 왕궁의 불꽃놀이 음반은 네빌 마리너 경(Sir Neville Marriner)의 세인트 마틴 인 더 필즈(Academy Of St. Martin In The Fields)와 오르페우스 챔버오케스트라(Orpheus Chamber Orchestra)의 연주를 추천 드린다.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은 존 바르비롤리 경(Sir John Barbirolli)과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그리고 BBC교향악단의 연주가 유명하다. 다른 영국 교향악단들 연주 또한 훌륭하다. 오페라 아이다는 무티(Riccardo Muti)와 뉴필하모니아, 제임스 레바인(James Levine)과 메트로폴리탄의 연주를 추천하겠다. ◆ 김상균 바이올리니스트서울대 음대 재학 중 오스트리아로 건너가 비엔나 국립음대와 클리블랜드 음악원 최고연주자과정 최우수 졸업. 이 후Memphis 심포니, Chicago civic오케스트라, Ohio필하모닉 악장 등을 역임하고 London 심포니, Royal Flemisch 심포니 오디션선발 및 국내외 악장, 솔리스트, 챔버연주자로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eigenartig@naver.com 2024.03.18 김상균 바이올리니스트
- K 바이오헬스 산업의 미래는 의사과학자 양성에 달려있어 김철홍 포스텍 IT융합공학과 주임교수 2024년 현재, 대한민국 사회는 2025학년도 의대 입학생 2000명 증원 정책을 둘러싸고 뜨거운 논쟁을 벌이고 있다. 정부는 열악한 필수 의료 및 지역 의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특효약으로 의대 증원을 주장하는 반면, 의사계는 의료 서비스 및 의료 교육 질 저하, 의료 인력 잉여 문제를 우려하며 반발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필자는 지난 2년 반 동안 대한민국 바이오헬스 산업의 미래를 책임질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해 힘써왔다. 최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의대 증원 신청 중 50명을 의사과학자 양성에 배치하기로 결정한 것도 바로 의사과학자 양성의 중요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이다. 대한민국은 2002년부터 기초 의학 분야 의사과학자 양성에 앞장서 왔다. 교육부, 보건복지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협력 아래 다양한 형태의 의사과학자 양성 사업이 추진되었고, 의과대학 역시 기초 의학 분야 연구자 양성에 힘써왔다. 하지만 연간 의과대학과 의학전문대학원 졸업생약 3000명 중 겨우 1%만이 기초 의학 분야를 진로로 선택하고, 의사과학자로서의 길을 이어가는 현실이다. 이는 졸업 후 의사과학자로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 부족하고, 의사과학자 양성 과정에서 병역, 생활비 등 현실적인 어려움이 겹쳐 발생하는 문제이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지난해 7월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미래의학관 혁신미래의료연구센터에서 의사과학자들이 연구하는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최근 의사과학자의 중요성이 다시금 주목받으면서 의료계, 정부, 산업계 전문가들은 기존 사업과 제도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예를 들어 연구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 과정 개편, 의사과학자 개인 지원 사업을 통한 진로 이탈 방지, 과학기술대와의 협력 강화 등을 통해 의사과학자 양성 사업을 더욱 고도화하고자 한다. 바이오 헬스 산업을 선도하고 우리나라의 의료 발전을 위해 모두가 한 가지 목표에 뜻을 모으고 있는 이 시점에, 포스텍·카이스트와 같은 과학기술대학은 새로운 형태의 의사과학자를 양성해다양성을 더하고자 한다. 지금껏 우리가 양성하기 위해 힘써온 의사과학자가 기초과학을 하는 의사였다면, 과학기술대학에서 키우고자 하는 의사과학자는 의학을 깊이 이해하는 공학자인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국민건강에 대한 관심 증가는 바이오헬스 산업의 폭발적인 성장을 이끌었다. 2020년 전 세계 시장 규모는 1경 3842조원에 달했으며 신약 개발뿐 아니라 인공장기, 예측 의학, 인공지능 기반 헬스케어 시스템 개발 분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는 CES(세계가전전시회)에서도 명확하게 드러났다. 2019년 헬스케어 분야는 전체 3.3%에 불과했던 혁신상 수상 기술이 2023년에는 86개로 가장 많은 혁신상을 배출하는 분야가 되었다. 우리나라의 의학 수준은 세계적인 수준이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바이오헬스 산업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각을 가진 인재가 필요하다. 포스텍·카이스트와 같은 과학기술대학은 공학·과학 기반의 의사과학자 양성을 통해 기존 의학과 공학의 시너지를 창출하고자 한다. 해외에서는 이미 다양한 의사과학자 양성 모델이 시도되고 있는데, 미국 칼 일리노이 공대는 세계 최초의 공학 기반 의대를 설립하여 공학 원리를 적용한 의학 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또한 싱가포르 국립대학은 기존 의대 운영과 더불어 연구 프로젝트 중심의 Duke-NUS Medical School을 신설해 기초의학 기반 의사과학자와 공학·과학 기반 의사과학자 양성을 병행하고 있다. 과학기술대학은 이러한 해외 사례를 참고하여 기존 의학과는 다른 차원의 의사과학자를 양성할 계획이다. 이는 단순히 무모한 도전이 아니라, 대한민국 바이오헬스 산업을 세계 시장을 이끌 수 있는 수준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고, 지금은 불확실성에 과감히 도전해야 할 때이다. 의료계에서도 이러한 다양성의 필요성과 현 시점의 중요성에 공감해 주시기를 바란다. 의학을 깊이 이해하는 공학자와 기초과학을 하는 의사가 함께 대한민국 바이오헬스 산업 발전을 이끌어 세상에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들어가는 미래를 기대한다. 포스텍·카이스트와 같은 과학기술대학의 새로운 시도는 의학과 공학의 융합을 통해 대한민국 바이오헬스 산업의 미래를 혁신하고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다. 2024.03.15 김철홍 포스텍 IT융합공학과 주임교수
- 바흐가 아내에게 바친 선물 독일은 남부 가톨릭 문화권과 중부 및 북부의 프로테스탄트 문화권으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다. 가톨릭 문화권은 마인 강의 남부 지역과 도나우 강 주변이다. 여기서 북쪽으로 올라가면 엘베 강의 색채가 느껴지기 시작한다. 북해로 흘러 들어가는 엘베 강의 중간 지역에 해당하는 튀링엔, 작센 및 안할트 지방이 바로 프로테스탄트 문화권의 핵심을 이루는 곳이다. 이 지역에 있는 주요 도시로 라이프치히, 드레스덴, 할레, 비텐베르크, 쾨텐, 바이마르, 에어푸르트, 아이제나흐 등을 손꼽을 수 있는데 이 도시들은 모두 가까이에 있다. 라이프치히의 성 토마스 교회와 바흐 동상. 튀링엔 지방의 작은 도시 아이제나흐 태생의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1685-1750)는 생의 마지막 27년 동안은 라이프치히에서 활동했다. 당시 인구 2만의 라이프치히는 권위 있는 대학이 있는 개신교의 보루이자 음악의 도시였으며 해마다 세 번의 유명한 박람회가 열려 많은 인파가 몰려들던 상업의 요충지였다. 라이프치히에서 바흐가 몸담았던 곳은 성 토마스 교회인데 이곳에는 그의 묘소가 있으니 오늘날 클래식 음악 순례자들에게는 가장 거룩한 성소인 셈이다. 성 토마스 교회 안 바흐의 묘소. 라이프치히에서 북서쪽으로 약 30㎞ 가면 헨델이 태어난 도시 할레가 있고, 그곳에서 다시 북쪽으로 30㎞ 가면 안할트 지방의 쾨텐이다. 쾨텐은 웬만한 지도에는 나오지도 않는 인구 2만 7000명 정도의 작은 시골 도시이지만 바흐의 행적을 찾아보는 여행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바흐는 쾨텐으로 오기 전 바이마르 궁정에서 활동하다가 1717년에 안할트-쾨텐 공 레오폴트(1694~1728)의 궁정의 음악감독으로 초빙됐다. 쾨텐에서 그는 아내 마리아 바르바라(1684~1729)와 4명의 어린 아들과 함께 살면서 여유를 갖고 창조적 재충전을 할 기회를 얻었다. 그것은 21세의 젊은 레오폴트 공이 열렬한 음악애호가였고 또 경건한 칼뱅주의자로 바흐에게 종교음악 작곡을 심하게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흐는 바이마르 시절과는 달리 종교적 요구와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세속음악 작곡에도 전념할 수 있었다. 그는 특히 오케스트라와 오케스트라에 쓰이는 악기를 위해 작곡하는 데 몰두했는데 바로 이 시기에 레오폴트 공 궁정의 저녁음악회를 위해서 여러 협주곡을 작곡했다. 작은 도시 쾨텐의 거리. 1720년 그는 레오폴트 공을 수행해 온천으로 유명한 카를스바트(오늘날 체코의 카를로비 바리)에 갔는데 두 달 뒤에 돌아와 보니 청천벽력 같은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사이 7월 7일 아내가 갑자기 사망해 이미 매장돼 있었던 것이다. 다음 해 1721년에는 라이프치히 남서쪽 30㎞ 떨어진 작은 도시 차이츠에서 온 20세의 소프라노 가수 안나 막달레나 빌케(1701~1760)가 쾨텐 궁정에 고용됐는데 36세의 궁정음악감독 바흐는 그녀와 눈이 맞아 그해 12월 3일에 결혼했다. 첫 번째 아내와 사별한 지 17개월 만이었다. 쾨텐에서 바흐가 살던 집 앞에 세워진 바흐 기념상. 이어서 그해 12월 11일에는 레오폴트 공이 안할트-베른부르크의 영주 딸 프레데리카 헨리에테와 결혼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그녀는 음악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심지어 레오폴트 공이 하인들과 함께 무의미한 짓을 하는 것을 막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바흐는 결혼 이듬해 1722년 아내에게 귀한 선물을 하는데, 그것이 바로 안나 막달레나 바흐를 위한 음악수첩이다. 바흐는 자신이 작곡한 건반악기 초보 연주자를 위한 음악의 자필 악보 모음을 그녀에게 헌정했다. 1722년 안나 마리아 막달레나 바흐를 위한 음악수첩 중 바흐의 자필 악보. 바흐는 쾨텐 궁정의 상황이 예전 같지 않았기 때문에 속히 다른 도시에서 안정된 수입이 보장되는 지위를 확보해야만 했다. 그러던 중 마침 라이프치히의 토마스 음악학교의 음악감독 자리가 비었다. 드디어 1723년 바흐는 쾨텐 생활을 모두 접은 후가족을 데리고 더 넓은 세계로 갔다. 라이프치히에 자리 잡은 바흐는 1725년에 다시 한번 안나 막달레나 바흐를 위한 음악수첩을 헌정했다. 두 번째 수첩에는 모두 42곡이 수록돼 있는데 그중 4번째 곡 미뉴에트 G장조는 건반악기 초보자들이 연주하기에 좋을 뿐만 아니라 선율 따라 노래 부르기에도 좋아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됐다. 그런데 이 곡은 바흐가 작곡한 것이 아니라 당시 드레스덴의 오르가니스트 크리스티안 페촐트(1677~1833)의 작품이다. 다시 말해 첫 번째 음악 수첩에는 바흐의 곡만 실려 있는 반면, 두 번째 음악 수첩에는 바흐뿐만 아니라 다른 작곡가들의 곡도 다수 수록된 것이다. 안나 마그달레나도 바흐에게 큰 선물을 안겨주었다. 그녀는 전처소생 아들 네 명을 정성스럽게 키웠을 뿐만 아니라 1723년부터 1742년까지 자그마치 13명의 자식을 낳았으니 말이다. (그중 7명은 어린나이에 죽었다) 바흐의 자식 중 나중에 유명한 음악가가 된 인물이 여럿 있다. 빌헬름 프리데만과 카를 필립 에마누엘은 첫 번째 결혼을 통해, 요한 크리스토프 프리트리히와 요한 크리스티안은 두 번째 결혼을 통해 얻은 아들이었다.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1735~1782)는 나중에 런던에서 활동했는데 그곳을 방문한 어린 모차르트에게 크게 영향을 끼친 장본인이기도 하다. ◆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건축 분야 외에도 음악·미술·언어·역사 등 여러 분야에 박식하고, 유럽과 국내를 오가며 강연과 저술 활동도 하고 있다.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동유럽 문화도시 기행, 이탈리아 도시기행,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 매력과 마력의 도시 로마 산책 외에도 여러 저서를 펴냈으며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받았다. culturebox@naver.com 2024.03.15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 심연으로 퍼지는 미지의 아름다움 1980년대 후반, 영국의 항구도시 브리스톨에서 기이한 움직임이 포착되기 시작했다. 느린 템포의 힙합 비트와 전자음악, 덥과 소울, 재즈, 그리고 사이키델릭을 뒤섞어낸 형태의 음악들이 등장했고 이는 소위 브리스톨 사운드라고 이름 붙여진다. 브레이크 비트를 샘플링 했지만 낮은 BPM으로 천천히 재생됐고, 베이스가 두드러지면서 분위기는 대체로 느긋하거나 우울했다. 후에 이 음악들은 트립합(Trip Hop)이라 불리게 된다. 소위 매시브 어택, 트리키, 그리고 포티스헤드가 브리스톨 트립합 3인방이라 편의상 거론되고 있는데, 사실 이들이 초기에 활동하던 시기에는 트립합이라는 용어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 1994년 6월, 믹스맥 매거진에서 미국 베이 에이리어 출신인 DJ 섀도우의 싱글 In/Flux를 설명할 때 트립 합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하면서 이후 널리 활용됐다. 앞서 언급한 브리스톨 트립합 3인방 모두 고유의 개성을 지니고 있지만 1988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매시브 어택은 트립합이 뻗어 나가는 데에 있어 가장 결정적인 토대를 만들어 놓았다. 이들은 힙합과 록, 레게, 덥 등의 요소를 능숙하게 섞어내는 한편 내면에 집중하는 가사와 사운드 디자인을 구성해내려 했다. 무엇보다 매시브 어택은 정치, 인권, 환경문제에 관한 활동들 또한 함께 전개했다. 자신들의 자동차 광고 수익을 기름 유출 복구 캠페인에 기부하기도 했고 기후 운동가들을 지원했으며, 각종 전쟁들에 관해서도 직접적으로 목소리를 높여온 편이다. 내한 공연 당시에도 한글로 된 뉴스 헤드라인을 배경에 깔고 계속 글귀를 바꿔가면서 공연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피티 아티스트로 활동하던 3D, 대디 G, 그리고 머쉬룸이 지역의 크루 와일드 번치에서 조우했다. 와일드 번치는 레게와 덥이 집중된 사운드 시스템 크루였는데 이들을 주의 깊게 관찰해온 네네 체리의 도움으로 인해 매시브 어택은 첫 앨범 Blue Lines를 완성할 수 있었다. 최초의 트립합 앨범이라 칭해지는 Blue Lines는 Unfinished Sympathy 같은 싱글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급속도로 주목받게 되고 이들은 영국에서 가장 혁신적인 팀으로 급부상한다. Blue Lines로 자신들의 스타일을 확립한 매시브 어택은 두 번째 앨범 Protection을 통해 본격적으로 어번 소울과 힙합 그루브를 자신들만의 속도에 맞춰 부드럽고 명상적인 형태로 완수한다. 이전 작에 이어 트리키가 히트 싱글 Karmacoma에 참여했고, 그 밖에도 자마이카 출신의 호레이스 앤디, 니콜렛, 에브리씽 벗 더 걸의 트레이시 손이 보컬로 합류했다. 내 경우 영화 배트맨 포에버 사운드트랙에 수록된 트레이시 손이 보컬을 담당한 트랙이 처음으로 들었던 매시브 어택 곡이기도 했다. 영화음악 작업으로도 이름을 알려간 크레익 암스트롱과 프로듀서 넬리 후퍼 또한 이 두번째 앨범을 보다 선명하고 감정적인 형태로 이끌어내는 역할을 했다. 완벽한 심야의 사운드트랙이라 평가받는 걸작 Mezzanine을 통해 UK 앨범 차트 1위를 차지하면서 매시브 어택은 확실하게 자신들의 위치를 공표한다. 두려움과 아름다움 사이의 긴장관계를 끊임없이 유지하는 앨범은 어둠과 신성함을 조합해내면서 마치 다른 차원의 흑백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듯한 감각으로 듣는 이들을 인도한다. 특히나 콕토 트윈스의 엘리자베스 프레이저가 보컬을 담당해낸 처연한 Teardrop, 그리고 매시브 어택 사상 가장 강렬한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Angel은 매시브 어택의 팬이 아니더라도 한 번쯤 은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머쉬룸이 탈퇴하고 대디 G 또한 휴지기를 가지면서 녹음에서 빠진 100th Window는 샘플링과 힙합 스타일을 배재한 첫 앨범이 됐다. Special Cases를 포함한 세 곡에서 시네이드 오코너가 보컬로 참여하기도 했으며, 데이먼 알반 또한 Small Time Shot Away에서 백보컬을 담당했다. 대디 G가 돌아온 앨범 Heligoland에서도 마찬가지로 다양한 보컬들이 함께했는데 데이먼 알반은 물론 매지 스타의 호프 산도발, 엘보우의 가이 가비 등의 목소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호레이스 앤디는 최근 앨범까지 꾸준히 한 두 곡 씩은 참여하면서 개근했다. 매시브 어택은 이후 베스트 앨범과 몇몇 EP를 발표할 뿐 정규 작을 내놓지는 않았는데, 그럼에도 공연은 꾸준히 전개해 나갔다. 2010년도에는 페스티벌 공연으로 한국을 찾기도 했으며 2019년도에는 Mezzanine의 20주년 투어를 진행하기도 했다. 영국을 대표하는 작곡가들에게 시상하는 아이버 노벨로 상을 수여 받으면서 영국을 대표하는 뮤지션으로 인정받기도 한다. 데이빗 보위, 마돈나 등의 거장들과 협업 작업물을 내놓기도 했고, 씨크릿, 블레이드 2, 자칼, 고모라 등의 영화에 곡을 수록하기도 했다. 특히 이연걸 주연의 영화 더 독의 경우 아예 전체 음악을 담당하기도 한다. 아마도 매시브 어택 관련으로 가장 흥미로운 떡밥은 다름 아닌 뱅크시와 관련된 사안일 것이다. 지난 2020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도시문화를 주제로 열린 아트페어 어반브레이크 아트아시아(URBAN BREAK Art Asia)에서 시민들이 세계적으로 어반 스트리트 아트를 대표하는 작가 뱅크시의 작품을 관람하고 있다.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신분을 노출하지 않은 채 활동하는 아티스트 뱅크시의 정체가 다름 아닌 매시브 어택이라는 소문이 바로 그것인데, 실제로 매시브 어택의 멤버 3D의 경우 그래피티 아티스트이기도 했다. 또한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기도 하며, 무엇보다 뱅크시의 벽화가 출몰하는 경로와 매시브 어택의 투어 경로가 겹쳤던 적이 더러 있었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그 가설을 믿기 시작했다. 당연히 본인들은 부정하고 있는 중이다. 매시브 어택은 시대를 초월하는 우아함을 어두운 분위기와 예민한 접근 방식을 통해 모던하게 구현해냈다. 밴드가 영향 받은 수많은 음악들이 매시브 어택의 곡이 전개되는 와중 스쳐 지나가지만 이들이 만들어내는 소리의 감촉은 그 어느 장르 와도 다르다. 그러니까 이는 다양한 음악들의 세포를 시험관에서 배양하고 끊임없이 교배를 거듭한 결과 특별한 변이종이 탄생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처음에는 음울한 사운드가 이질적으로 다가올 수 있지만 점차 이 가라앉는 감각에 위화감이 없어져가고 결국 이 어두운 소리에 잠겨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가 된다. 뒤숭숭하고 어두운 밀레니엄과 21세기 초반인 현재의 분위기는 의외로 크게 다르지 않았고 이러한 상황의 뒷배경에 깔리는 매시브 어택의 곡들은 언제나 시의적절해 보였다. 간단히 말해 이것은 몸과 마음, 무엇보다 영혼을 위한 현대 음악에 다름 아니다. ☞ 추천 음반 ◆ Mezzanine (1998 / Virgin, Circa) 밴드가 가능한 어두운 음악을 하기로 작정하고 작업한 작품임에도 오히려 가장 큰 성공을 거둔 결과물이 됐다. 영국은 물론 호주, 아일랜드, 뉴질랜드 차트 정상을 차지하기도 했는데, 국내에서도 앨범 발매 당시 대형 레코드스토어 체인점에서 벽면 한바닥을 모두 이 앨범으로 채워놓고 광고했던 기억이 난다. 어두운 미학을 적극 탐구해낸 작품으로 매시브 어택과 세기말 당시의 분위기를 체감하기에 가장 적절한 앨범이라 하겠다. ◆ 한상철 밴드 불싸조 기타리스트 다수의 일간지 및 월간지, 인터넷 포털에 음악 및 영화 관련 글들을 기고하고 있다. 파스텔 뮤직에서 해외 업무를 담당했으며, 해외 라이센스 음반 해설지들을 작성해왔다. TBS eFM의 On the Pulse 음악 작가, 그리고 SBS 파워 FM 정선희의 오늘 같은 밤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했다. 록밴드 불싸조에서 기타를 연주한다. samsicke@hanmail.net 2024.03.13 한상철 밴드 ‘불싸조’ 기타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