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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김창수가 백범 김구로 탄생한 바로 그곳!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 토크쇼 ‘역사다방’ 인천 편에 다녀와서

2019.04.17 정책기자 진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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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과 백범 김구 선생? 두 조합의 공식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황해도에서 태어나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광복 이후 서울 경교장에서 돌아가셨는데 인천이라니.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아는 사람만 알았던 비밀이 지난 13일 인천 생활문화센터에서 열린 ‘역사다방’에서 베일을 벗었다.

국가보훈처가 주관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토크쇼가 46일 안동, 11일 서울, 13일 인천에서 펼쳐졌다. 따뜻한 커피와 함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이야기가 두런두런 동네 사랑방처럼 따뜻하게 진행된 인천을 찾았다.

국가보훈처가 주관하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스몰토크쇼가 4월 6일 안동, 11일 서울, 13일 인천에서 펼쳐졌다.
국가보훈처가 주관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토크쇼가 4월 6일 안동, 11일 서울, 13일 인천에서 펼쳐졌다.
 

MBC 손정은 아나운서의 사회로 진행된 역사다방은 임정의 리더, 김구를 말하다를 주제로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이익주 교수와 ‘찌라시 한국사’의 저자 김재완 작가가 패널로 참여했다.

자, 이제 비밀을 밝혀볼 때다. 과연 김구 선생은 인천과 어떤 관계가 있었을까? 바로 인천 내항 1부두를 축조하는 노역에 백범 김구 선생도 참여했다. 어떤 연유에서였을까?

13일 열린 인천 역사다방은 손정은 MBC아나운서 사회로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이익주 교수와 찌라시 한국사의 저자 김재완 작가가 패널로
13일 열린 인천 역사다방은 MBC 손정은 아나운서의 사회로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이익주 교수, 김재완 작가가 패널로 참여해 진행됐다.

 
김구 선생은 일생 동안 두 번의 옥고를 치렀다1896년 을미사변의 원한을 풀고자 왜병 중위 쓰치다를 처단하고 인천감리서에 투옥됐다. 1911‘105인 사건에 연루돼 서대문 형무소에 투옥됐고, 1914년 인천감리서로 이감됐다. 평생 두 번의 옥고를 치르는 동안 두 번을 모두 인천에서 복역한 셈이다. 선생은 복역 중의 노역으로 인천 부두를 축조했다.

이익주 교수는 김구 선생에게 인천은 감옥이다라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다. 이 교수는 선생은 근대 학문을 감옥에서 접했고 새로운 것을 배우며 수감 생활 동안 자신을 발전시켜 나갔다. 선생이 백범이라는 호를 쓴 것도 두 번째 투옥 때였다고 덧붙였다.

이익주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왼쪽)과 작가
이익주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왼쪽)와 김재완 작가.
 

백범(白凡)! 백정(白丁)의 백()과 범부(凡夫)의 범()자를 따서 만든 이름이다. 천한 백정과 무식한 범부까지 전부가 적어도 선생만한 애국심을 가진 사람이 되게 하자는 뜻으로, 독립에의 염원을 담아 만든 호였다. 김구 선생의 본래 이름은 김창암이었으나 동학농민운동 때 김창수로 개명하고 두 번째 투옥 생활 중 김구로 개명했다.

선생의 삶의 족적들이 단편영화를 상영하듯 이익주 교수의 이야기 속에 펼쳐졌다. 이 교수는 특히 ‘백범일지’를 꼭 읽어볼 것을 추천했다. 인천감리서에서 탈옥했던 선생의 이야기는 마치 무협지의 한 장면 같다고도 했다.

객석에서 질문들이 이어졌다. 초등학교 6학년인 김소담 학생은 413일이었던 임시정부 수립일이 411일로 바뀌었는지 궁금하다는 질문을 던졌다. 이 교수는 임시정부가 대외적으로 수립·공포한 날이 413일이었다. 그런데 410일부터 11일까지 밤샘토론을 통해 국호와 임시정부의 방향이 정해졌고 실제 임시정부가 탄생한 11일을 임시정부 수립일로 제정하게 된 것이라는 설명을 전했다.

참가자들이 전한 질문과 애국선열께 남긴 감사의 글.
참가자들이 전한 질문과 애국선열께 남긴 감사의 글.
 

중국 상해에서 임정 요인으로 활동하던 시절, 일본 조계지 내 병원에서 낙상사 후유증으로 돌아간 아내의 임종조차 지키지 못했고, 큰 아들이 폐병으로 죽어갔으나 항생제를 아들에게만 줄 수 없어 사실상 아들의 죽음을 묵과했던 한 사람으로서의 김구 선생의 삶에 대한 이야기도 이어졌다.

임시정부 생활은 하루에 한 끼도 먹기 힘든 가난과의 끝없는 싸움이었고 위험 속의 생활이었다. 김구 선생은 알려진 것만 3번의 암살시도를 받았고 총격을 당한 적도 있었다.

4월 13일 인천 생활문화센터에서 열린 역사다방 전경.
4월 13일 인천 생활문화센터에서 열린 역사다방 전경.
  

역사다방의 문을 내리며 김재완 작가는 김구 선생의 나의 소원을 낭독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김 작가는 우리 역사에 관심을 갖고 되새겨야 한다. 정치에 무관심한 대가는 저질스런 이들에게 지배받는 것이라는데 정치 대신 역사를 대입해도 같다며 힘주어 말했다.

참가자들 모두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며 단체 사진을 촬영했다.
참가자들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며 단체 사진을 촬영했다.
 

이익주 교수는 “19세기 말 세계의 많은 민족이 식민지, 반식민지 상태였다. 그러나 우리만큼 끊임없이 싸운 민족이 없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대한민국을 지켜낸 임시정부를 기억해야 한다. 이들이 꿈꾸었던 조국을 이루고 있는지, 이들의 희생에 우리가 부응하고 있는지 다시금 되새길 때이다라고 말했다.

교과서의 글줄에는 다 담기지 못한 이야기가 역사다방을 채웠다. 더 이상 그저 머릿속에 낱말의 나열들로 알고 있던 백범 김구 선생’,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아니었다.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한 4! ‘대한민국’, ‘자유’, ‘민주가 눈이 아닌 마음으로 읽혀지는 계절이다.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진윤지 ardentmithr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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