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조금 특별한 미술관을 찾았다. 12월 12일 탄생한 ‘모두미술공간’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은 장애인 예술전시와 신진 장애예술인 발굴을 위해 시각 예술 전문공간 ‘모두미술공간’을 개관했다.
무엇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예술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마음에 들었다. 더욱이 위치가 편리한 점이 큰 장점이다. 교통의 중심인 서울역 앞에 자리했기 때문이다. 늘 모임이나 친구를 만날 때면 찾게 되는 서울스퀘어에 또 하나의 명소가 생겨 반갑다. 이곳을 쉽게 찾으려면 서울스퀘어 본관이 아닌 별관으로 오는 걸 추천한다. 서울스퀘어 본관을 바라보고 왼쪽으로 가면 주차장으로 가는 길이 나오는데 그곳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올 수 있다.
이곳에서는 현재 개관전시 ‘감각한 차이’가 열리고 있다. 전시는 2025년 2월 7일까지 이어진다. 그 전시를 총괄한 엄정순 감독이 “어떤 점이 다르다고 느끼셨어요?”라며 내게 질문을 던졌다. 답변에서도 말했지만, 어느 미술관보다 넓고 쾌적하게 느껴졌다. 그래서였을까. ‘모두미술공간’의 첫인상은 편안했다.
이곳 입구에 들어서면 안내데스크를 만나게 된다. 안내데스크에는 점자용 책과 필담 노트 등이 놓여 있다. 이를 대여해 작품을 보다 상세하게 즐길 수 있다. 옆쪽에는 휠체어를 둘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전시실 1, 2는 통합해 사용할 수 있다. 또 전시장 라운지와 세미나실은 대관 가능하며 장애 예술인(단체)은 우선 대상이자 50% 할인을 받을 수 있다.
또 장애 유형에 맞는 점자 안내문, 음성 해설 프로그램. 자막 수어 프로그램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뿐만 아니라 관람 접근성을 위해 작품의 높이와 벽면 색 등을 고려했으며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자동문으로 바꾸고 시각장애인을 위해 안전손잡이와 점자블록 및 편의시설을 마련했다. 전시실에는 촉지도 및 쉬운 설명과 캡션 정보가 준비돼 있고 작품별 QR코드로 문자 및 소리 AI 해설이 제공된다. 미리 누리집을 통해 전시 안내 자료 등도 받을 수 있다.
앞으로 이곳에서는 국내·외 장애예술인 작가를 위한 연 2회 기획전시와 각종 교육, 교류 프로그램으로 장애예술인 활동을 지원할 계획이다. 또한, 비장애인 협력사업도 함께 운영해 소통에 주력할 생각이다.
현재 열리고 있는 개관전 ‘감각한 차이’는 장애예술인 4인과 비장애 예술인 2인이 함께한 전시다. 전시에서는 장애가 감각의 결핍이 아닌 감수성으로 발현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전시는 꽤 흥미롭게 미디어작품을 비롯한 체험형 작품까지 다양하게 구성돼 있다.
전시실 1, 2 (현재 ‘감각한 차이’ 전시 중)
휠체어도 편하게 지날 수 있는 확 트인 복도를 따라 전시실로 들어갔다. ‘감각한 차이’는 전시실 1, 2를 모두 사용하고 있다. 전시실 1에서는 다중감각 경험이 가능한 감각의 벽, 전시실2는 커뮤니티와 장애예술을 만날 수 있다.
전시 ‘감각의 벽’은 점자교과서 300여 권과 프로젝트 등으로 구현됐다. 벽 한쪽에 대다수 사람이 읽지 못하는 점자책들이 붙어 팔랑거리고 있다. 모두 점으로 이뤄진 말들, 실제 쓰이는 점자교과서다. 못 읽는 점자책을 만져본 후, 쓰고 싶은 단어를 모니터에 입력하자, 바로 점자로 바꿔줬다. 내가 쓴 단어가 벽 위에 나오고 점자와 목소리로 변환됐다.
전시 ‘언덕 위의 파도’는 김령문, 백승현 부부 작가의 작품들이다. 김령문 작가의 ‘Circle Circle on a Hill#2’는 관객이 직접 체험해 볼 수 있어 재미를 준다. 옆에 놓인 석고 볼을 장애물 있는 경사로에 굴려 생기는 소리와 부딪혀 깨지는 조각들을 볼 수 있다. 석고가 구르고 부딪히며 생기는 소리와 깨지는 파편 모양은 저마다 다르다. 사실 굴리기 전에는 깨질지 그냥 구를지 모른다. 그런 점들이 더한 재미를 유발한다. 오른쪽에 있는 작품들은 백승현 작가의 작품으로 독일 유학 시절 빵 공장에서 일할 때 느꼈던 생각을 표현했다. 또 공간 안에서 보는 영상작품도 있어 찬찬히 구경해보면 많은 느낌을 받으리라.
전시실 2에서는 가면 파란색 모형이 시선을 끈다. 라일라 카심 작가의 ‘시부야 폰트’다. ‘시부야 폰트’는 2016년 일본 시부야 지역의 장애인 미술 워크숍에서 시작됐다. 장애인들의 글씨와 그림을 바탕으로 디자인스쿨 학생들이 상업적으로 상품화했다. 이 폰트는 단순한 폰트가 아니다. 시각적 언어를 통해 디자이너, 장애커뮤니티, 지방정부 등이 협업하고 소통했다. 구글폰트 및 유니클로의 UT me 프로젝트 등, 이 폰트와 패턴을 활용한 기업과 기관은 무려 100개가 넘는다고. 이를 토대로 우리나라에서 얼마 전 제작한 ‘센터폰트’도 함께 전시돼 있다. 센터폰트는 ‘감각한 차이’ 전시팀에서 기획, 제작, 서울 중구장애인복지관과 협업했으며 20여 명의 발달장애인과 워크숍을 거쳐 만들었다. 전시장에서 ‘센터폰트’가 새겨진 스탬프를 종이 책갈피에 찍어 기념해도 좋겠다.
박찬별 작가의 ‘나 그리고 백 개의 망원경’이란 작품도 독특하다. 그의 시야는 5cm 정도로 한정돼 있어 가장 작은 캔버스 0호에 그림을 그린다. 게다가 밝고 강한 빛을 볼 수 없어 새벽이나 노을 그린 풍경이 대부분이다.
강승탁 작가의 ‘무지개 호랑이’는 그림을 통해 발달장애로 인한 삶의 상처를 극복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는 작품 속 강하고도 다정한 동물들이 약한 동물을 지켜준다고 말한다.
전시실 2를 지난 공간에는 다양한 세미나를 비롯해 포럼 등을 개최할 생각이다. 이날도 ‘감각한 차이’ 라운드테이블이 진행됐다. 한국 사회에서 장애를 가진 예술가들이 어떻게 탄생하는지를 토론했다. 일반적으로 한명의 작가가 탄생하는 것도 쉽지 않은 현실에서 장애를 가진 예술가들이 어떤 경로로 발굴되고 활동하는지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 이곳을 찾은 이유도 이들에게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였다. ‘감각한 차이’ 전시를 맡은 엄정순 감독에게 궁금한 점을 들어봤다.
Q. 개관전 ‘감각한 차이’ 예술감독을 맡으셨어요. 어떤 취지가 있을까요?
A. 저는 화가입니다. 제가 시각장애 어린이들과 미술 프로젝트를 25년 넘게 하면서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예술 교육을 받고 예술가가 되고 싶어 하는 것을 많이 봤어요. 장애와 예술 두 분야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요. 개관전은 향후 이 공간의 방향을 보여주게 되잖아요. 이곳이 조성된 취지대로 장애예술가들을 많이 소개하고 성장시키는 발판이 돼주리라고 생각해요.
Q. 장애예술인 전시로서 특별히 중점을 둔 사항이 있을까요?
A. 사실 작품상에선 없지요. 장애라는 걸 알리지 않으면 장애인과 비장애인 작품을 구분하기 어렵잖아요. 단, 관람객층을 넓힌다는 의미로는 굉장히 혁신적인데요, 관람이 편해야 작품 감상이 잘 되잖아요. 그래서 동선을 가장 고려했는데요, 바닥 턱을 염두에 두고 벽 색깔을 고려했고 쉬운 글로 해설을 하거나 글자 크기를 키우는 등 세세하게 신경썼어요. 우리가 익숙해서 넘어갔던 것들을 다시 생각해봤죠. 앞서 기자님이 여기가 넓다는 첫인상을 말씀하셨는데 저는 굉장히 반가웠어요. ‘이거 보기 좀 편하게 돼 있네’ 그런 게 관객의 마음을 열게 하거든요.
Q, ‘감각한 차이’는 어떤 전시로 보면 좋을까요?
A. 보통 일반적, 사회적 인식과 달리 창작 세계에서는 장애는 결코 흠이 아니니까요. 그런 편견들을 좀 걷어내고자 하는 의지도 있었고요. 장애를 숨기는 게 아니라 오히려 창작의 동력으로 삼는 걸 보이고 싶었어요.
개관전 작가 중 김령문 작가(43)와 백승현 작가(47)와도 이야기를 나눴다. 김령문 작가는 선천적으로 손이 불편한 장애를 가지고 있고 그의 남편 백승현 작가는 오랫동안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예술활동을 지켜봐 왔다.
Q. 이곳에서 전시를 하시면서 타 미술관과 좀 달랐던 점이 있었을까요?
A. 첫 번째 특색은 비장애인 작가도 참여하지만, 장애인 작가가 참여하는 전시공간이잖아요. 베리어프리로 장애인 관객들과 작가들을 더 배려한 공간이라는 점이 제일 큰 차이같아요. 실례로 공간 담당자분들이 저희 작업을 너무 잘 이해해 주신 상태에서 최대한 어떻게 구현될 수 있을지 상당히 신경을 써주셨어요. 다른 곳에 비해 한 10배 이상 작가들과 운영자, 기획자들과 소통을 한 것같아요.
자세히 보면 벽마다 색이 다 다르잖아요. 작업이랑 어울리는 색을 예리하게 선택해주셨죠. 또 벽 모서리도 살짝 둥글려져 있거든요. 이런 디테일들을 섬세하게 살려주셨어요. 일반적으로 장애예술이라면 투박한 학예회 같은 느낌이 떠오르는데 이곳에서는 오히려 굉장히 섬세하게 전시해주셨죠.
Q. 장애인 예술가로 불편했던 점도 있었을 것 같아요.
A. 저는 선천적으로 장애가 있었어요. 어릴 때부터 방법을 찾아와서 작업할 때 장애가 불편했던 건 전혀 없고요. 사회 안에서 시선들이 힘들었어요. 요즘은 많이 좋아졌지만 어릴 때 저를 바라보는 시선이나 철없는 애들의 말 때문에 상처를 입었죠. 취업에서도 아무래도 불리한 것 같고요.
Q. 이번 전시를 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요.
A. 앞서도 말했지만, 전시를 통해 각 담당자와 작가들의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체감했어요. 어떤 곳은 기획자의 의도가 많이 반영된다고 하는데요, 이곳에서는 대화를 나누며 작가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하고 포용해 함께 도전할 수 있었거든요. 정말 그 점이 무척 중요하다는 걸 새삼 깨달았어요. 앞으로 그런 분들을 많이 기획담당자로 만나기를 바라고 있어요.
Q. 앞으로 장애예술가로 바라는 점이 있을까요?
A. 좀 더 열린 시각과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할 것 같아요. 장애예술가의 재능을 다양하게 표출할 여건이 마련되고 다양한 활동이 활성화되면 좋겠어요. 장애예술가라 틀에 박힌 전시회가 아니라 장애예술가의 개성을 살리면 좋을 것 같아요. 참 다양하거든요. 공간 연출을 멋지게 해서 그 재능을 인정받았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이 장애예술가의 작품을 많이 접해야 할 것 같고요. 물론 장애예술인 입장에서 창작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되면 좋겠지요. 일반 갤러리에서는 대관료가 비싸 지원금 대다수가 대관료로 나가거든요. 미술관에 쉽게 접근하고 향유할 수 있도록 이런 편안한 환경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지난 2021년 장애문화예술원의 조사결과 장애예술인의 문화예술활동에 어려운 점은 시설 부족(25%)과 연습 및 창작공간이 부족(23.9%) 등으로 나타난 바 있다.
그래도 다행이랄까. 지난해 10월 모두의 극장이 생겼다. 또 이번에도 ‘모두미술공간’이 조성돼 장애예술인의 문화예술 활성화 기반을 마련했다. 좀 더 이런 공간이 늘어나 장애예술인의 예술성을 다양하게 느껴보고 싶다는 바람이다. 간혹 만났던 장애예술인의 작품에서 비장애인이 경험하지 못한 깊이와 특성을 봐왔기 때문이다. 또 좀 더 바란다면 장애인의 재능을 미술을 넘어 다양한 곳에서 접하고 싶다. 전시 관람과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미술관 안에 있던 글귀가 떠오른다. ‘예술은 장애를 무거워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