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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단상 내 손 안의 '고마운' 모바일 주민등록증 내게 모바일 주민등록증은 '고마운' 주민등록증이다. 사용방법이 어렵지 않고, 실생활에서 사용하기에 편리하기까지 한 모바일 주민등록증은 오는 3월 28일부터 전국 어디서나 발급이 가능하다. 김윤서 충주시 주덕읍 행정복지센터 주무관 주민등록증을 스마트폰 속에 쏙 담을 수 있는 시대가 왔다. 1968년, 종이로 된 주민등록증에서 56년 만이다. 내가 본 최초의 주민등록증은 발급일자가 1999년으로 시작하는 엄마의 주민등록증이다. 플라스틱 카드로 된 주민등록증 속 앳된 엄마의 얼굴이 신기했다. 주민등록증 일제 교체 때 면사무소에서 찍은 거라고, 그래서 사진이 영 어색하게 느껴진다던 엄마였다. 주민등록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으로 일하는 지금, '주민등록증 재발급을 받으려 하는데, 읍행정복지센터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느냐'라고 문의하는 전화를 종종 받곤 한다.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 이제는 그럴 수 없다고 말하면서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그때의 분위기를 짐작만 할 뿐이다. 25년이 지났다. 읍행정복지센터에서 주민등록증에 들어갈 사진을 찍을 순 없지만, 우리가 늘 한 몸처럼 지닌 스마트폰 속에 주민등록증을 넣을 수는 있게 되었다.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곳에서 신분증을 제시한다. 시청, 읍면동 행정복지센터, 건강보험공단과 같은 공공기관을 비롯하여 은행, 병원, 공항 등 본인확인이 필수인 곳들에서 준비한 신분증을 내민다. 주류 구입을 위해 방문하는 집 앞 편의점에서도 말이다. 하지만 신분증의 중요성을 잘 아는 나 역시도 스마트폰은 한 몸처럼 가지고 다녀도 신분증은 깜빡하고 두고 올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럴 때면 무척 난감했다.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스마트폰 갤러리 속 고이 잠들어 있던 '신분증을 찍은 사진'을 내밀고 싶을 정도였다. 읍행정복지센터를 찾는 민원인들도 신분증을 깜빡하고 두고 왔다고 말씀하실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1차로 무인민원발급기에서 발급하시라고 안내한다. 하지만 인감증명서나 지적도, 전입세대 열람 확인서처럼 창구에서만 발급랑 수 있는 서류들이거나 무인기에서 발급이 가능하더라도 지문이 안 나오는 경우 어쩔 수 없음을 설명하고 민원인을 되돌려보내며 나의 마음도 편치 않았다. 이제는 모바일 주민등록증 발급을 민원인께 권유한다. 모바일 주민등록증은 'IC주민등록증'을 발급받거나 읍면동 행정복지센터에서 'QR 발급'을 받는 두 가지 방법으로 발급받을 수 있다. IC주민등록증은 IC칩이 내장된 주민등록증으로, 스마트폰에 가져다 대는 것으로 인식이 가능하다. QR 발급은 실물 주민등록증을 지참하고 행정복지센터를 방문하여 일회용 QR코드를 촬영해 나의 주민등록증을 스마트폰에 담을 수 있는 방식이다. 오늘 읍사무소에 지갑을 통째로 분실해 주민등록증을 재발급하러 오신 민원인이 계셨다. 평상시처럼 주민등록증 재발급 신청을 하고, 발급 신청 확인서(임시 신분증)를 드리려는데, 모바일 신분증 생각이 퍼뜩 났다. '모바일 주민등록증이라고, 방금 재발급받으신 신분증을 스마트폰 속에 담을 수 있는데, 발급해 드릴까요?' 하고 여쭤보니 민원인께서는 '나는 그런 거 잘 못해서, 내가 할 수 있을까?' 작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자신 없어 하시는 모습에 갑자기 엄마 생각이 났다.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하는 걸 낯설어하고 어려워하는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마침 점심시간이 한창이라 대기 중인 민원인도 없어서 선생님도 충분히 하실 수 있다며 천천히 발급 절차를 안내해 드렸다. 모바일 신분증 애플리케이션 설치부터, 본인인증, 정보무늬(QR) 촬영까지. 연신 어색해하던 어르신은 내가 더 알려드리지 않아도 어느새 안면인식까지 마치셨다. 그리곤 스마트폰 속의 주민등록증을 보며 계속 신기해 하셨다. 신분증을 잃어버려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걱정하시던 어르신이 앞으로는 모바일 신분증을 공공기관, 병원, 은행에서 활용하실 거라고 생각하니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무인민원발급기 내 모바일 신분증 인증이 가능해진 화면. 더욱더 편리해진 점은, 창구뿐만 아니라 무인민원발급기에서도 지문 인식 대신 모바일 신분증 인증을 통해 본인확인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문 인식에 실패해서 필요한 서류를 발급받지 못했던 민원인들이 이제는 모바일 신분증 애플리케이션 내 QR코드 촬영을 통한 인증으로 주민등록, 가족관계등록부, 국세, 지방세, 보건복지, 농지대장 등 대부분의 서류를 발급받을 수 있게 되었다. 신규 주민등록증 발급 대상자에게 IC주민등록증을 홍보하는 귀여운 엽서들. 오늘 나는 2008년 3월생, 신규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아야 할 학생들에게 주민등록증 발급 통지서를 보냈다. 최초 발급 시 IC 주민등록증이 무료임을 함께 안내하며 주민등록증의 변화를 통해 시대의 흐름을 체감했다.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새롭게 변화하는 행정 제도와 시스템을 이해하기 쉽도록 민원인께 안내하고, 관련 업무를 원활하게 처리하는 것이 우리 공무원들의 일임을 느낀다. 다시 한번 내가 하는 이 업무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내게 모바일 주민등록증은 '고마운' 주민등록증이다. 사용방법이 어렵지 않고, 실생활에서 사용하기에 편리하기까지 한 모바일 주민등록증은 오는 3월 28일부터 전국 어디서나 발급이 가능하다. 특히 만 17세 신규 발급 대상자들이 무료로 IC주민등록증을 발급받아 산뜻한 출발을 하길 바란다. ◆ 김윤서 충주시 주덕읍 행정복지센터 주무관 충주시에서 민원담당으로 일하며 겪은 일상을 수필로 쓴 글이 등단의 영광으로 이어졌다. 공직 업무의 꽃인 '민원 업무'로 만난 수많은 일화들이 매일 성장통이자 글감으로 다가오고 있다. 내가 건넨 한마디가 누군가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으로 업무에 임하고 있다. 2025.03.13 김윤서 충주시 주덕읍 행정복지센터 주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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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단상 우리가 도서관으로 향하는 이유 '소란'의 장소 혹은 '정숙'의 장소를 넘어 도서관을 다시 그려내는 것이 사서의 일은 아닐까? 보이지 않는 장벽을 거두어내기 위해서는 도서 대여를 제외한 도서관에 가기 위한 온갖 핑계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한숙희 국립중앙도서관 사서 눈내리는 삼월에 텅 빈 항아리에 눈이 내리고 쌓인 그리움은 비가 된다 허허로움을 차곡차곡 접어젖은 편지를 쓴다 어둠에 잠긴 세상에 수묵의 그림이 펼쳐진다 눈꽃이 피고 떨어지고 쓰러져 있는 봄을 일으킨다 - 한숙희 詩 '도서관의 러브레터' 언젠가 영재를 대상으로 하는 한 방송국의 프로그램에서 공공도서관을 본 적이 있다. 꽤 오래전 일인 것 같은데도 기억이 온전한 것은 그 내용이 주는 신선함 때문이었다. 아버지만의 공부법을 상세하게 설명해 줬는데, 그 공부법은 다름 아닌 공공도서관과 관계되어 있었다.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공공도서관을 찾아 열 차례 넘게 이사를 다녔고 도서관 앞에서 소소한 일상을 보낸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하는 대신 도서관을 즐거운 곳으로 만든다. 도서관 앞에서 아들이 좋아하는 운동을 같이 하거나, 땀을 흘린 후에 도서관에 있는 식당에서 간식을 먹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한다. 한 아버지의 공부법에 마음을 빼앗겼던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의 이유는 그 프로그램이 방영될 즈음 생겨난 도서관에 대한 인식 변화였다. 과거까지 도서관은 긍정적인 장소였던 것 같다. 무미건조에 가까웠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든 '우리 집 앞에 도서관이 있다면?'은 한 번쯤 고려해 볼 수도 있은 옵션이었다. 그러나 그프로그램이 방영되던 시기에도서관은 님비(NIMBY)의 대상으로 전락해 버렸다. 도서관 이용자 수의 증가가 소음과 교통 체증을 만들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썼다. 이 때문에, 집값이 비싼 지역에서는 도서관 건립이 반대되는 현상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그런 시점에 한 아버지의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가, 그리고 그 종착지가 도서관이라는 점이 사서인 나로서는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둘째의 이유는 프로그램 속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도서관에서 보내는 장면을 보며 이제는 다 커버린 나의 아들들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봄을 기다리고 있는 국립중앙도서관 전경.(필자 제공) 두 아들이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나는 특근으로 인하여 주말에 자주 도서관으로 출근했다. 남편은 아들들을 데리고 퇴근 시간 1~2 시간 전에 도서관으로 놀러 오곤 했었는데, 보통은 도서관 어귀에서 간단한 운동을 했던 것 같다. 내가 퇴근길에 도서관을 나와 먼저 마주치는 것은 도서관 앞에서 재밌게 놀고 있는 가족들의 모습이었다. 이따금 그때의 추억이 떠올라 도서관 주위에서 노는 아이들이 괜스레 반가울 때가 있다. 그렇게 세월은 더 흘렀고, 사서들은 더 커져 버린 도서관에 대한 통념과 마주하고 있는 것 같다. '소란'의 장소 혹은 '정숙'의 장소를 넘어 도서관을 다시 그려내는 것이 사서의 일은 아닐까? 2017년에 개봉한 프레더릭 와이즈먼(Frederick Wiseman)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뉴욕 라이브러리에서(EX LIBRIS : The New York Public Library)는 같은 지점에서 큰 도전을 안겨주었다. 뉴욕 라이브러리에서의 도전은 도서관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업무들을 있는 그대로 소개해주었다는 점에 있다. 돌봄 교육, 강연, 예술·전시, 채용·상담, 오락에 이르기까지 도서관이 일상과 맞닿아서 가지는 업무들을 소개한다. 안타까운 것은 뉴욕 공공도서관뿐 아니라 한국의 공공 도서관들도 이와 같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에도, 이와 같은 사실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어쩌면 낡은 이미지를 청산하는 작업이 필요할 때인지도 모르겠다. 보이지 않는 장벽을 거두어내기 위해서는 도서 대여를 제외한 도서관에 가기 위한 온갖 핑계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 소박하지만 참해요 만나보면 좋아질 거예요 자꾸자꾸빠져들 거예요 비벼서 펼쳐보면 향기에 눈이 부실 거예요 낯설지 않은 미소행복해질 거예요 그렇게 만나면 나란히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시간을 보내요 한가운데에 멈춰요 잠시 가지런히 하고서다시 가면 돼요 - 한숙희 詩, '이달의 추천도서' ◆ 한숙희 국립중앙도서관 사서국립중앙도서관 국제교류홍보팀 근무, 2021년 공직문학상 시 부문 은상 수상, 같은 해 시인정신으로 등단했다. '우리가 행복한 도서관'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출근하는 35 년 차 사서이자 도서관에서의 일상을 시로 구현해내는 시인이기도 하다. 2025.03.11 한숙희 국립중앙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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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기행 푸르고 푸르다! 담양 죽녹원과 암뽕순대 많은 사람이 평안함과 따뜻함을 찾는 고장 '담양(潭陽)'은 먼 옛날 고려 때부터 담양이라 불린, 이름 그대로 물과 햇볕이 풍요로운 땅이었다. 그래서일까? 하늘을 찌를 듯 푸르디푸른 대나무와 단풍이 아름다운 메타세쿼이아 길, 그리고 물길 따라 유려하게 펼쳐지는 관방제림은 생각만 해도 시원하고 청초하면서 뭔가 운치 가득하다. 이윤희 방송작가, 로컬문화 전문가 봄이 왔건만 아니온 것과 같다는 '춘사불래춘'는 서시, 양귀비, 우희와 함께 고대 중국의 4대 미녀로 꼽히는 절세미녀 왕소군 이야기다. 흉노와의 화친 정책에 의해 흉노족에게 시집가 왕의 애첩이 되었으나 고향을 그리며 "오랑캐 땅은 꽃과 풀이 없으니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라고 한탄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봄이면 널리 인구에 회자되는 이 글귀는 시인 동방규가 왕소군을 그리며 지은 것이다. 많은 사람이 평안함과 따뜻함을 찾는 고장 '담양(潭陽)'은 먼 옛날 고려 때부터 담양이라 불린, 이름 그대로 물과 햇볕이 풍요로운 땅이었다. 그래서일까? 하늘을 찌를 듯 푸르디푸른 대나무와 단풍이 아름다운 메타세쿼이아 길, 그리고 물길 따라 유려하게 펼쳐지는 관방제림은 생각만 해도 시원하고 청초하면서 뭔가 운치 가득하다. 유난히 꽃샘추위와 눈발이 만연한 2025년,일찌감치 봄을 느끼기 좋은 푸르디푸른 땅, 전라남도 담양으로 향한다. 어쩌면 방송작가 생활하면서 전라도의 대도시 광주나 목포보다 더 많이 찾아간 곳이 담양인 것 같다. 아닌 게 아니라, 담양은 작년 기준 1576만 명의 방문객( 한국관광공사의 '한국관광데이터랩' 기준)이 다녀간 대표 관광지다. 로컬100에 담양을 대표하는 대나무공원 죽녹원(竹綠苑)과 국내 가장 예쁜 길로 널리 알려진 메타세쿼이아 길, 그리고 관방제림 등 담양을 대표하는 명품숲이 이름 올린 것은 당연하다. 사실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오랫동안 '방송'과 '글'을 직업 삼은 내게 담양은 숲의 땅이라기보다 가사문학의 땅으로 먼저 다가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한때 소쇄원이 주는 담박한 문취에 위로받던 쓸쓸한 시절도 있었다. 꽉 막힌 조선의 조정과 불화했던 사림(士林)들은 무등산 정기 어린 담양 일원에 누와 정자를 짓고, 빼어난 자연경관을 벗 삼아 시문을 짓고 후학 양성에 힘썼다. 정치와 선을 긋고 오직 대쪽같이 올곧은 선비 정신 계승에 힘썼던 이들은 국난이 일었을 때는 분연히 일어나 무기를 들고 앞장섰다. 아들 고인후와 같이 전사한 고경명 같은 의병장이 바로 이 땅의 사림이다. 이것이 호남 사림들의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였다. 이런 꼿꼿한 사림들이 나고 자란 담양의 대나무 공원 죽녹원은 바람 세찬 2월에도 한결같은 푸르름으로 반겨주었다. 약 31만㎡의 울창한 숲이 펼쳐진 죽녹원은 2005년에 개원한 국가지방공원이자, 이곳의 대나무숲은 국가 산림문화자산이다. 산림문화자산이라는 단어가 생소한데, 생태적, 경관적, 정서적으로 보존할 가치가 큰 유형·문형의 자산이라는 것이다. 담양 죽녹원. (필자 제공) 사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는 대나무가 자라기 좋은 환경은 아니다. 그러나 연평균 기온이 12.5℃로 매양 따뜻하면서 연간 강수량이 1300㎜로 고온다우한 담양은 대나무가 자라기 최적의 환경이었다. 영산강 상류가 임야를 가로지르면서 담양의 토지가 비옥한 것도 한몫했다. 그 덕에 우리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그저 오래된 이야기로만 만날 뻔한 대나무 숲을 이토록 멋스럽게 거닐 게 된 것이다. 죽녹원 입구에서 나무 계단을 하나씩 밟고 올라가면 대나무가 선사하는 초록 향연에 눈이 시원해진다. 그리고 대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대숲 바람이 일상에 지친 심신이 깨어나면서 귀로 또 한 번 대나무를 즐기게 된다. 푸른 대나무 사이사이 쏟아지는 햇빛과 햇볕은 안온하고 아늑하다. 연신 카메라를 들면서 영화 '봄날은 간다'의 주인공들처럼 푸른 바람의 찰나를 어떻게든 담으려 애를 써 본다. 이대로라면 하루 종일이라도 걷겠다 싶은데, 이렇게 대숲을 거닐며 죽림욕을 즐길 수 있는 총 2.4km의 산책로가 마련돼 있다. 운수대통 길, 죽마고우 길, 철학자의 길, 선비의 길 등 총 8가지 주제로 저마다 다른 느낌을 자아내는 대숲 길을 기호 따라 골라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적게는 2~3분 많게는 15분~20분 코스라 남녀노소 누구라도 편히 대나무가 주는 피톤치드와 음이온을 마음껏 섭취할 수 있다. 약 45cm쯤 돼 보이는 대나무 한 마디가 자라는 데 약 40일에서 45일 걸린다니, 하루에 1cm씩은 자란단 말이다. '우후죽순'이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지 싶다. 그런데 손 닿는 대나무마다 칼로 이름을 새겨 넣거나 하트를 그려 넣어 상처 난 게 눈에 밟힌다. 눈살이 찌푸려지지만 그래도 대나무들이 이런 생채기 따위에 굴하지 않고 하늘 높이 치솟는 것에 안도한다. 게다가 대나뭇잎에서 떨어지는 이슬을 먹고 자란다는 죽로차(竹露茶)가 자생하고 있다. 죽녹원 바깥에는 갖은 대나무 기념품 등 볼거리와 먹을거리도 쏠쏠하다. 죽녹원 답사 후 찾아간 식당은 원래 담양시장 안에서 '암뽕순대'를 팔다가 시장 개발과 함께 이전한 30년 업력의 가게다. 아마 '암뽕'이라는 단어는 전라도 사람이 아니고서는 잘 모를 것이다. 암뽕은 새끼보, 아기보와 같은 말로, 돼지나 소의 태반과 자궁을 식재료로서 일컫는 단어다. 정체를 알고 나면 좀 거북하고 미안하긴 하지만, 여느 내장과 마찬가지로 고소하고 쫄깃해서 미식가들이 즐겨 찾는 부위다. 암뽕은 다른 내장들에 비해 냄새가 심해 씻고 삶거나 요리하는 것도 쉽지 않다. 전라도의 향토음식 '암뽕순대'는 암뽕이라는 이름이 붙긴 했으나 이것으로 순대를 만드는 것은 아니고, 돼지 '막창'에 속을 채워 만든 순대를 암뽕순대라 부르고 있다. 암뽕순대.(필자 제공) '삼겹살 랩소디'를 제작할 때도 느꼈지만, 그 옛날 돼지란 곧 축제였다. 털 한 모도 버리지 못해 구둣솔을 만들고, 오줌보로 공을 차고 놀았다는 돼지! 그 부속을 어찌 버렸으랴. 암뽕마저도 귀한 식재료였을테고 그 이름은 '암뽕순대'에 오롯이 남아있다. 돼지막창 역시도 냄새가 역하기 쉬운 부속.속을 뒤집어 불순물과 지방 덩어리를 깨끗하게 제거하고 소금이나 밀가루로 깨끗하게 씻어내기를 여러 번 해야 특유의 잡내를 잡을 수 있다. 그 다음 대파, 양파, 숙주, 당면 등 여러 재료로 막창을 채우는데, 전라도의 많은 가게에서는 숙주도 아닌 콩나물을 애용한다. 콩나물이 순대 소에만 들어가는 게 아니라, 아예 암뽕순댓국 국물에도 들어있다. 그래서일까? 국물이 여느 순댓국처럼 진하고 텁텁한 게 아니라 맑은 갈비탕처럼 깨끗하면서 콩나물국밥처럼 시원하기도 하다. 종래의 암뽕순대국과는 확연히 차별된다. '암뽕순대'라는 이름의 원형 '암뽕'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쫄깃하고 고소한 '막창'의 특징을 잘 살려서 속은 부드러우면서 씹는 맛은 살아있는 막창순대를 기가 막히도록 잘 구현했다. "돼지 막창이 잘 보면 두께가 달라요. 어느 한 쪽은 굵고 어느 한 쪽은 가늘어요. 그래서 속을 넣고 잘 삶은 다음에 막창이 두꺼운 쪽은 더 푹 삶아서 국밥으로 내고 막창 두께가 좀 덜한 쪽은 접시순대로 냅니다." 담양시장에서만 25년 장사했다는 주인 이정숙(74) 씨의 노하우가 확실히 엿보이는 암뽕순댓국, 아니 엄밀히는 막창순댓국이다. 속도 어찌나 보드라운지 꼭 요샛말로 '크리미' 하달까? 암뽕순댓국.(필자 제공) "옛날에 이 지역 사람들은 순대를 대나무에 넣고 찝니다. 그러면 대나무기름과 돼지 기름이 어우러져 잡내도 싹없어지고 훨씬 순대가 맛났지요. 같은 대나무는 세 번 이상 사용하지 못해요. 대나무 기름이 싹~빠지니까 더 이상 쓸모가 없지요." 대나무로 필통이나 컵, 의자까지 만들지만, 여전히 음식을 만들 때도 이리 활용하고 있다니 놀라웠다. "예전에는 식당 바깥에서 조리가 가능했으니까 찜통 자체가 엄청나게 컸어요. 그래서 대나무를 1m 길이로 잘라서 한꺼번에 순대 삶는 게 가능했는데, 요새는 실내로 찜기를 들여야 하기 때문에 40~60cm 정도로 짧게 잘라서 사용합니다." 이렇게 대나무에 넣어 한 시간 반 정도 찐 대나무암뽕순댓국. 쫄깃하고 녹진하면서 시원하고 구수한 이 맛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춘사불래춘이라더니,아니올씨다. 봄은 벌써 흔들리는 저 댓잎 마디마디에,그리고 우리의 코와 입에 진작 당도했다. 이제 쭈욱~~ 기지개 펴고 일하러 가자!!! ◆ 죽녹원 ㅇ 주소|전남 담양군 담양읍 죽녹원로 119 ㅇ 영업시간|매일 09:00 - 18:00 / 입장료 있음 ㅇ 문의|061-380-2680 ㅇ 누리집|www.juknokwon.go.kr ※ 자세한 사항은 누리집 참조 ◆ 이윤희 방송작가, 로컬문화 전문가 TV조선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 KBS '한식연대기', 넷플릭스 '삼겹살 랩소디', 스카이트래블 '한식기행 - 종부의 손맛' 등 우리 식문화를 소재 삼아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집필했다. 방송작가 22년 차지만 언제나 현역~! 지역마다의 고유한 맛과 멋을 알리는 맛깔난 글을 쓰고 싶다. 2025.03.06 이윤희 방송작가, 로컬문화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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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 고령화 대극복 출산율 반등, 남성 육아와 기업참여가 이끈다 한국 사회는 이제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이 모든 변화의 중심에는 남성 육아 참여와 기업의 육아 지원 제도가 자리 잡아야 한다. 김기탁 가치자람 아빠육아문화연구소장,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 자문위원 지난 2월 26일 출생아 수와 합계출산율이 일시적인 반등을 보였다는 정부의 발표는 대한민국에 희망적인 신호를 주었다. 출산율 증가의 원인 중 하나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남성의 육아 참여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다. 한국 사회는 아직 남성의 육아 참여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이 부족했으나, 최근 5년 사이에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정부의 육아지원정책, 기업의 사내 육아지원제도 그리고 사회 전반의 노력이 모여, 출산율 반등의 긍정적인 신호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한국에서의 저출생 문제는 단순히 경제적 요인에 그치지 않는다. 사회적 문화와 가치관의 변화가 절실히 필요하다. 특히, 남성의 육아 참여가 증가하지 않으면 출산율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과거 한국 사회에서 남성들은 주로 경제적 지원을 담당하고, 가사와 육아는 여성의 몫이라는 고정관념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이러한 전통적인 역할 분담에서 벗어나, 남성들도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사회적 변화가 시작되었다. 실제 2021년 보건복지부 전국 보육조사 실태조사 중 아버지가 자녀출산 양육으로 인한 주된 경력단절의 이유 중 '일보다 육아 전담에 대한 가치 "(46.3%) 가 1위를 차지하고 2018년(7.8%) 보다 38.5% 크게 올랐다. 남성 육아휴직 제도의 도입과 확대는 이러한 변화의 중요한 첫걸음이다. 30~40대 남성들이 일·가정 양립의 중요성을 느끼고 육아휴직을 사용하면서 가사와 육아의 부담을 아내와 나누는 문화가 확산되었고 2024년 고용부 통계에 따르면 남성 육아휴직 사용자는 4만1829명으로 육아휴직급여 수급자의 31.6%를 차지했다. 이는 앞으로의 출산율 증가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남성의 육아 참여는 가정 내 양성평등을 촉진할 뿐만 아니라, 여성의 경제 활동을 지원하는 효과도 있다. 여성가족부 '2024 통계로 보는 남녀의 삶'에서는 기혼 여성 가운데 출산·육아 등으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 수가 2015년 207만 3000명에서 134만 9000명으로 34.9% 줄었다고 발표했다. 정부의 정책적 노력 외에도, 기업들이 육아 지원 제도를 확대하고 있는 것도 출산율 반등에 큰 영향을 미쳤다. 과거에는 육아휴직이 여성에게만 주어지는 경우가 많았고,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은 드물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기업들은 남성 육아휴직을 더욱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가족 친화적인 EFG(환경·가족·지배구조) 경영으로 바꾸어 나가고 있다. 기업들은 이제 육아휴직을 사용한 남성 직원에게도 불이익을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육아휴직 후 직장 복귀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도록 노력하고 있다. 또한, 정부는 육아휴직 사용을 촉진하기 위해 기업에 경제적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육아와 일의 양립을 위한 정책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남성들에게 육아에 대한 참여를 더욱 쉽게 만들고, 출산을 고려하는 부부들에게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한다. 이는 한국에서 둘째 아이 출산 비중이 다시 증가하는 등 출산율에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남성 육아 참여와 가족 친화 기업의 증가와 무관하지 않다.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막을 올린 '제47회 베페 베이비페어'를 찾은 예비아빠가 유아용품을 살펴보고 있다. 2025.2.6.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통계청 2024년 3분기 통계에 따르면, 둘째 아이의 출산 비중이 32.5%로 상승했다. 이는 정부의 출산 장려 정책과 기업의 육아휴직 제도 확장, 그리고 무엇보다 남성들의 육아 참여가 한데 어우러져 이루어진 변화이다. 출산율 반등을 위해서는 경제적 지원뿐만 아니라, 가정 내 역할 분담의 변화가 필요하다. 남성들의 적극적인 육아 참여는 단지 가사와 육아의 부담을 나누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사회적 인식의 변화이며, 가족 친화적인 문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특히, 남성들이 육아에 참여함으로써 여성들의 경력 단절을 예방하고, 부부가 함께 자녀를 양육하는 모델을 구축할 수 있다. 한국 사회는 이제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여성의 경제적 활동 촉진, 가사와 육아의 평등한 분담, 그리고 사회적 지원 시스템의 확장이 필수적이다. 이 모든 변화의 중심에는 남성 육아 참여와 기업의 육아 지원 제도가 자리 잡아야 한다. 남성들이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때, 그 부담을 함께 나누는 가정과 사회가 만들어지며, 이를 통해 우리는 가족 친화적 사회, 출산율 회복, 양성평등을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이다. 사회의 변화가 이끄는 출산율 반등은 정부의 정책, 남성들의 적극적인 육아 참여, 기업의 정책적 지원, 모두가 하나가 될 때 가능해졌다. 또한, 기업과 정부의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지원이 맞물려 더 나은 육아 환경을 제공한다면, 한국은 조금 더 나은 저출생 극복의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 김기탁 가치자람 아빠육아문화연구소장,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 자문위원 저출산고령화위원회 자문위원이자 가치자람사회적협동조합에서 아빠육아문화연구소장으로 근무 중이다. 보건복지부 100인의 아빠단으로 활동하며 세 아이와 함께 소통하는 아빠로 성장할 수 있었다. 아빠육아와 남성육아휴직 인식문화 확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25.03.04 김기탁 가치자람 아빠육아문화연구소장,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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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 고령화 대극복 치매도 삶입니다 인지능력 장애로 치매 어르신의 행동이 어리석고 미련해 보일지언정, 우리 사회를 이끌었던 주역이었으며 우리를 돌보아 키워주신 국민이며, 여전히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며 삶을 살아가는 개인이다. 하나의 생명을 지닌 소중하고 돌봄받아야 할 가족이며 이웃임은 엄연한 사실이다. 고영호 건축공간연구원 연구위원·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 민간위원 2025년의 봄을 맞이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해 있다. 국민의 5명 중 1명 이상이 고령자인 상황 속에서 우리나라는 치매 고령인구 역시 증가 추세에 있다. 통상적으로 고령자 중 치매 어르신의 비율은 10%를 추산하고 있으며 고령자 비율의 증가와 함께 늘어나는상황이다. 고령인구 1000만 명 시대 속에서 10%를 초과하는 치매 어르신의 수는 대략 추산하여도 100만 명이며, 보건복지부 중앙치매센터는 우리나라 치매 어르신이 2030년 136만 명, 2050년 300만 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추산하였다. 치매 어르신은 돌봄이 필요하다. 그 돌봄은 가족, 시설, 지역사회를 통해 제공된다. 치매 어르신의 돌봄 가족은 일평균 6~9시간을 돌봄에 사용하며, 가족의 심리적, 신체적, 경제적 부담이 큰 것으로 연구된 바 있다. 필자가 전문가 및 돌봄 관계자와 심층 인터뷰한 경험에서도 치매 어르신 1인 당 2~3인의 가족 구성원이 필요하며, 배우자 또는 자녀의 일상이 온전히 치매 어르신의 돌봄에 할당되어 가족 구성원의 활기찬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의 재가급여를 통해 하루 최대 4시간 가량의 방문간호·돌봄을 지원받을 수 있으나, 월 한도 지원액을 소진하게 되면 나머지의 요양·돌봄은 온전히 부양가족의 몫이 된다. 하루 최대 4시간의 재가 돌봄 지원 역시도 남은 20시간의 하루는 부양가족의 돌봄으로 주어진다. 가족의 돌봄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치매 어르신의 돌봄은 시설을 통해 제공된다. 국가에서도 치매 어르신을 위한 전문요양시설 확충을 위해 노력 중이다. 치매 어르신 본인의 속옷 정도만 들고 입소·입원해야 했었던 소위 환자로서의 요양시설 입주 한계를 극복하고자 집과 같은(Home-like) 생활환경을 제공하며 시설 내 치매 어르신의 일상생활과 간호·돌봄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유니트케어(Unit Care) 모델을 개발하고, 시범사업을 추진 중이다. 하나의 온전한 인격체로서 존중받아야 하는 치매 어르신이 익숙한 집과 마을을 떠나 요양시설에 입주하시는 불가피한 상황에서도 집에서의 생활과 유사한 환경과 행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함에 큰 의의가 있다. 관련 전문가들은 치매는 발병 후 이렇다 할 치료법이 없으며 오히려 경증(경도인지장애)에서 중증 치매로 나아가는 속도를 지연하고 방어하는 것이 최선의 방안임을 강조한다. 이를 위해 가족과 시설 돌봄 외에 집과 마을, 지역의 환경이 치매친화적으로 개선되고 조성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일본, 영국, 네덜란드 등은 치매의 조기진단, 서비스 향상과 함께 지역사회 지속거주를 위한 치매친화 환경조성을 강조하며 시설 중심에서 지역사회 중심으로 치매정책 방향을 전환하고 치매친화 환경조성 지침 등을 개발·보급 중에 있다. 아일랜드는 장애인·노인 등의 생활안전성과 편의성, 접근성 증진을 위한 유니버셜디자인(Universial Design)에 치매친화 환경 영역을 포함하고, 주택과 병원, 지역공동체 및 돌봄센터, 요양시설 등의 치매친화 환경조성 필요 근거와 사례를 제시하였다. 아일랜드 치매친화 주택설계 지침.창문위치, 방향성 지원, 인지능력 지원 등 치매 어르신을 위한 2층 규모 단독주택 조성시 유의사항을 설명하고 있다 출처 : Ireland National Disability Authority, 2015, p.10 네덜란드의 호그백(De Hogeweyk)은 마을 단위로 치매 요양돌봄 시설을 조성하여 30여 가구가 입주할 수 있는 주택과 각종 편의시설을 갖추고치매 고령자가 마을 형태의 요양돌봄 단지 내에서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례도 있다. 미국 랜턴 마을(Lantern of Chagrin Valley), 캐나다 랭글리 마을(The Village Langley), 프랑스 알츠하이머 마을(Village Landais Alzheimer) 등 역시 '치매친화마을형 주거환경'으로 조성된 사례이다. 호주 코론지 치매친화 마을형 시설단지(Korongee Dementia Village).2020년 조성된 호주의 첫 번째 치매친화 마을형 시설단지이다.- 출처 : Alzheimer's Disease International. (2020). p.103. 치매 어르신은 치매라는 병을 가진 환자의 특성과 고령자의 특성을 동시에 가진 국민이기 때문에 치매 관리에 관한 정책과 고령자 돌봄에 관한 정책의 공통 대상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치매 어르신 돌봄에 관한 정책은 '치매관리법',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 등에 기반하여 추진된다. 국정과제45(100세 시대 일자리·건강·돌봄체계 강화)는 노인돌봄과 치매돌봄 체계 강화, 지역사회 지속거주 실현의 환경 조성을 강조하며 치매 어르신일지라도 가정과 지역에 머물며 충분한 서비스와 맞춤형 커뮤니티 환경을 통한 생활밀착형 돌봄 확산의 필요를 제시한다.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2021~2025)'은 치매관리를 위한 돌봄 인프라 지원 확대와 치매 예방·관리 서비스 강화 등의 종합 지원 필요를 강조하며, '제4차 치매관리 종합계획(2021~2025)'은 치매 어르신·가족·지역사회가 함께하는 치매안심사회 실현을 위한 인프라와 전달체계 확충 필요를 강조한다. 중앙 및 광역 치매센터와 지역 치매안심센터는 시설 입소 서비스 연계, 치매인식개선 교육 등 의료적 관점에서 치매 질환의 관리에 집중하는 사업을 수행하며, 치매 어르신과 돌봄 가족은 장기요양등급에 따른 재가·시설 서비스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치매 어르신에 대한 국가와 지역의 실효적 지원을 위해 치매 어르신 통계작성, 유니트케어 시범사업 등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통상 치매 어르신 1인 당 돌봄 가족 2~3인이 매달려야 하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치매 어르신 100만 명을 초과한 현재 치매 관련으로 지원이 필요한 국민 수는 300만 명을 초과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국가의 법과 계획, 국정과제에서 치매 어르신의 지역사회 지속거주 지원은 치매 어르신과 가족이 시설 돌봄에 의존하기 전에 지역 생활환경에서 최대한 독립적 활동과 일상생활 영위를 돕는 다양한 치매친화 생활환경 모델 개발이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치매친화 생활환경 조성을 통해 치매 고령자의 사회적 입소를 최대한 방어하고, 치매 어르신 돌봄 가족의 부양부담과 국가·지자체의 관리부담을 완화하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미국, 네덜란드, 영국 등 해외의 치매 어르신은 치매 어르신을 위한 요양시설 기준, 치매친화 생활환경 조성 지침 등을 통해 지역사회 지속거주의 다양한 거주환경을 지원받고 있다. 치매 어르신을 위한 시설 또한 개별 건축물 단위의 장기요양시설·돌봄센터·병원을 넘어 면(面) 단위 마을형 주거공간을 조성하여 치매 어르신의 일상생활 수행능력을 높이고 공동체 생활을 지원하고 있다. 치매는 한자어로 어리석고 미련함을 의미한다. 인지능력 장애로 치매 어르신의 행동이 어리석고 미련해 보일지언정, 우리 사회를 이끌었던 주역이었으며 우리를 돌보아 키워주신 국민이며, 여전히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며 삶을 살아가는 개인이다. 치매라는 용어사용의 개선은 차치하더라도, 하나의 생명을 지닌 소중하고 돌봄받아야 할 가족이며 이웃임은 엄연한 사실이다. 2026년부터 '제5차 치매관리 종합계획(2026~2030)'과 '제5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2026~2030)'이 동시에 시행될 예정으로 주무부처와 기관은 계획수립을 위해 노력 중이다. 해외의 치매친화 환경조성 지침과 사례 등을 통해 한국형 치매친화 생활환경 조성의 방향을 검토하고, 우리나라 치매 어르신과 가족의 치매친화 생활환경 수요 등에 기반하는 다양한 치매친화 생활환경 모델이 제시되고, 주체별 역할분담과 운영구조, 모델의 지역사회 적용·확산을 위한 정책 방안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 고영호 건축공간연구원 연구위원,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 민간위원 건축공간연구원 고령친화정책연구센터장, 기획재정부 인구위기대응 TF 고령사회 대응반 위원 등으로 활동하였으며, 현재 대통령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민간위원, 국토교통부 인구대응협의체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고령자 주거와 복지의 연계, 고령친화 공동체마을 등에 대한 고령친화 건축도시공간 정책연구 전문가이다. 2025.02.27 고영호 건축공간연구원 연구위원·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 민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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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인생 퇴직 후 30~50년 어떻게 살 것인가? 퇴직 후에도 일을 하기 위해서는 현역 세대가 할 수 없는 일이거나,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하려 하지 않는 일을 할 수밖에 없다.바람직한 것은 현역 시절부터 퇴직 후 일의 중요성을 일찍 깨닫고 미래의 직업과 연결 지어 새로운 일을 찾는 것이다. 강창희 행복100세자산관리연구회 대표 100세 인생을 말할 정도로 수명은 늘어났는데 퇴직 연령은 빨라서 많은 직장인이 고민을 하고 있다. 2023년 말 취업 컨설팅 업체 잡코리아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40세 이상 직장인이 체감하는 평균 퇴직 연령은 53.4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퇴직 후 30~50년을 더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가장 큰 문제는 노후 생활비이다. 충분한 노후 생활비를 준비하지 못한 채 퇴직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인생에서 재산이 가장 많을 때는 퇴직 직전인 50대이다. 2024년 3월 기준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50대 가구의 가구당 총보유자산은 6억 1400만 원이다. 여기에서 가구당 평균 부채 1억 300만 원을 빼면 순자산은 5억 1100만 원. 언뜻 생각하면 50대 후반에 순 자산 5억 1100만 원이 있으면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을 거로 생각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중 4억 2700만 원이 부동산, 그것도 대부분이 살고 있는 집값이라는 점이다. 가용 순 금융자산은 8400만 원밖에 안 된다. 이 돈으로 어떻게 30~40년을 살아갈 수 있겠는가? 초조한 나머지 주식이나 선물, 코인 같은 것으로 단기 재테크를 하려다 그 돈마저 날리는 사례도 있다. 남는 건 결국 살고 있는 집 한 채인데, 그 집에서 올해는 화장실을 팔아 쓰고 내년에는 다른 방을 팔아 쓸 수도 없는 노릇이다. 2024년 어르신 일자리 박람회에 참석한 어르신들이 일자리 사업을 확인하고 있다.2023.12.13. (마포구 제공)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이웃 나라 일본에서 경험한 것처럼 인구가 줄고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10~20년 후 장기적인 집값 하락 현상이 나타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 가계부채를 갚지 못한 경우에는 주택빈곤에 빠질 수도 있다. 선진국의 경우에는 보유 재산이 없더라도 노후 최소 생활비 정도는 연금을 받아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공무원, 교직원, 군인 출신과 현역 시절에 특별히 준비한 사람 외에는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고령 세대가 받는 연금은 국민연금 정도인데, 2024년 8월 기준 65세 이상 고령자 1007만 명 중 국민연금 노령연금을 몇십만 원이라도 받는 사람은 68%에 지나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수령액이다. 월 60만 원 미만이 70%를 차지한다. 100만 원 이상 수령자는 11%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자녀의 도움을 기대할 수도 없다. 결국 퇴직 후에도 뭔가 일을 해서 모자라는 생활비에 보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우리보다 20~30년 고령화 사회를 앞서가고 있는 일본의 사정은 어떤가? 2022년에 일본에서 출판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어 있는 '퇴직 후의 진실' 이라는 제목의 책을 읽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은 우리보다 앞서 선진국에 진입했고 연금제도의 역사도 길기 때문에 퇴직자들은 생활비 걱정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책에 의하면, 일본의 60세~80세 인구 대부분이 월 수입 250만 원(한화) 이하인데, 월 생활비는 300만 원 정도라는 것이다. 따라서 퇴직 후에도 월 50~100만 원 정도는 일해서 벌어야 한다. 실제로 70세 남성 취업률은 46%에 이른다고 한다. 그렇다면 어떤 일을 하는가? 많이 하는 일 중 하나가 아파트 관리인인데, 경쟁률이 50:1 정도라고 한다. '노노(老老) 케어'도 눈에 띈다. 일본의 요양시설에 가면 60대, 70대, 심지어 80대까지 건강한 노인을환영한다는 모집 광고가 붙어 있다. 돌봄 대란, 돌봄 난민이 사회 문제화된 일본의 현실을 반영하는 게 아닐까 생각된다. 그 외에도 생협 지역 위원, 컴퓨터 강사, 회사 고문, 가사 대행 서비스, 도서관 사서 보조, 아르바이트 등의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일을 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들이 많다. 청년 실업이 넘쳐나고있던 직업도 사라지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영국 옥스퍼드대학 마틴스쿨이 발표한 고용의 미래 보고서에 따르면, 2033년에는 현재 있는 직업의 47%가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퇴직 후에도 일을 하기 위해서는 현역 세대가 할 수 없는 일이거나,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하려 하지 않는 일을 할 수밖에 없다. 바람직한 것은 현역 시절부터 퇴직 후 일의 중요성을 일찍 깨닫고 미래의 직업과 연결 지어 새로운 일을 찾는 것이다. 그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일을 하면 현재 하는 일도 더욱 잘할 수 있을 것이다. 불행히 그런 준비 없이 퇴직했다면, 체면을 내려놓고 허드렛일에 가까운 일을 할 수밖에 없다. 일본에서도 아파트 관리인의 채용 경쟁률이 50:1이라고 하지 않는가? 주변에서 보면 체면을 내려놓고 이런 일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고급 공무원으로 퇴직한 후 주간 노인 보호센터에서 노노 케어 일을 하는 분도 있다. 70이 넘은 나이에 노노 케어 일을 하는 여성도 있다. 이분은 어머니 간병을 위해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땄다고 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90세 넘은 할머니를 방문돌봄하고 있는데, 서로 마음이 맞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보람도 있고 급여도 받아 만족을 느낀다고 했다. 주위의 지인들에게도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라고 권유하고 있을 정도이다. 외국계 기업의 서울 지사장으로 퇴직하고 개인택시사업 자격을 받아 운전을 하는 분도 있고, 대기업 임원으로 퇴직한 후 택배 분류 작업 아르바이트를 하는 분도 있다. 이제 우리 사회도 퇴직 후에 뭔가 일을 하는 게 당연한 사회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 강창희 행복100세 자산관리 연구회 대표,전 미래에셋 부회장 대우증권 상무, 현대투신운용 대표, 미래에셋 부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행복100세 자산관리 연구회 대표로 일하고 있다. 대우증권 도쿄사무소장 시절, 현지의 고령화 문제를 직접 마주하면서 노후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품격 있는 노후를 보낼수 있는 다양한 설계방법을 공부하고 설파하고 있다. 2025.02.25 강창희 행복100세자산관리연구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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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읽기 도파민의 시대 현실의 세상은 늘 재미로 가득 차 있고, 끝없이 자극이 주어지지 않는다. 때로는 고통도 있고 좌절도 있고 아픔도 있다. SNS 세상이 이런 현실의 도피처가 되어서는 안 된다. 스마트폰을 접고 도파민에서 벗어난다기 보다는 인터넷 세상과 건강한 관계를 재정립 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결국 답은 조화와 균형에 있다.신영철 정신건강정책 혁신위원회 위원장,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참 좋은 세상이다.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손가락만 까딱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 20년 전이면 상상도 못할 일이 손바닥 안에서 모두 이루어지고 있다. 뇌가 너무 쓸데없는 자극을 많이 받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옥스포드 사전은 지난해 '뇌썩음(brain rot)'을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다. 왠지 섬뜩한 단어인데 도파민에 찌든 현대인들에 대한 경고의 의미로 들린다. 우리 사회의 과도한 SNS 소비와 의존으로 인해 지적 손상이 발생하지는 않을지 걱정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특히 유튜브 등의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숏츠', 1분 이내의 짧은 영상이 무한 스크롤을 통해 재생되면서 우리의 뇌를 지나치게 자극하게 된다. 그래서 '도파민 중독'이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인간의 뇌는 거의 1000억 개에 가까운 신경세포로 구성되어 있다. 이 신경들이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세포와 세포간에 신호가 전달되어야 하는데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신경전달물질'이다. 여러 종류가 있는데 인간의 생각과 감정, 그리고 행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도파민과 세로토닌, 그리고 노르에피네프린이라는 물질이다. 도파민 중독이라는 무서운 용어를 사용하다 보니 마치 도파민이 무슨 죄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도파민은 인간의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물질이다. 우선 도파민은 인간의 보상회로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어떤 행동을 할 때 기분이 좋아진다면 인간은 당연히 그 행동을 더 자주 반복하게 된다. 뇌의 측좌핵에서 전전두엽으로 이어지는 보상회로에 도파민이 분비되어 자극을 주면 기분이 좋아지고 보상행동이 일어나게 된다. 문제는 이게 너무 지나치면 소위 중독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반대의 경우는 어떨까? 어떤 행동을 해도 뇌에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당연히 의욕이 상실되고 행동을 중단하게 되지 않을까? 바로 도파민이 동기강화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지나친 스마트폰 사용에 대항해서 나오는 도파민 디톡스는 도파민을 차단하는 것이 목표가 될 수 없다. 또 그래서는 안 된다. 스마트폰을 접고 도파민에서 벗어난다기 보다는 인터넷 세상과 건강한 관계를 재정립 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결국 답은 조화와 균형에 있다.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백양누리에서 열린 청소년들의 디지털 기기 의존을 줄이기 위한 '디지털 디톡스 캠프'에서 중학생들이 '스마트폰을 대체한 아날로그의 즐거움'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2024.8.7.(ⓒ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도파민의 적절한 분비가 내 삶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하는가, 그 반대로 작용하는가의 문제인 것이다. 그렇다면 왜 숏츠는 중독성이 강한 것일까?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뇌에 보상이 빨리 주어지기 때문이다. 짧고 강한 자극일수록 도파민 분비는 증가한다. 당연히 보상이 빨리 주어지면 중독성향은 높아진다. 술을 마시는데 일주일 후에 취한다면 과연 알코올 중독자가 생길까? 경마장에 가서 배팅을 하면 말들이 트랙을 돌고 들어온다. 스릴이 느껴진다. 만약 말들이 달리다가 경마장 밖으로 나가서 한달 후에 들어 온다고 생각해 보자, 과연 베팅을 할까? 숏츠와 같은 자극적이고 단순한 콘텐츠가 꼭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학업에 지친 학생들, 일상에 찌든 직장인들이 일과를 마치고 잠시 휴식을 위해 본다면 말릴 생각은 없다. 우리 뇌에는 실행기능을 담당하는 전전두피질이 있는데 어떤 일을 계획하고, 판단하고, 중요한 결정을 하는 등의 중요한 일을 담당하는 고차원적인 뇌 영역이다. 불행히도 이 영역이 작동되는 데는 많은 에너지가 든다. 그래서 별로 중요하지 않고, 별 생각 없이 할 수 있는 일들, 이미 익숙해져서 굳이 생각이 별로 필요 없는 일들은 고위 중추 대신 하부 영역인 자동조절시스템을 통해 습관적으로 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일종의 절전 모드를 사용하는 것이다. 대단히 합리적인 에너지 사용 시스템이다. 숏츠를 보는 행동이 바로 여기에 해당된다. 일시적인 기분 전환이나 가벼운 스트레스 해소용이라면 좋겠는데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무한 반복되는 게 문제다. 자극을 받은 뇌는 '조금만 더, 조금만 더'를 외친다. 잠깐 본 것 같은데 벌써 새벽이다. 이런 경험을 누구나 한 두 번 해 보았으리라. 바로 시간 왜곡 현상이다. 재미있고 기분 좋은 일을 할 때 시간이 빨리 간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을 것이다. 몰입이 진행되면 가성 최면 상태에 빠지게 되고 시간이 빨리 흘러간다. 특히 비디오 게임, 숏츠와 같이 화면을 통한 시각 자극이 이런 현상을 더 잘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상의 리듬이 무너지고 다음 날까지 지장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게임이나 SNS로 인한 지나친 시간소비도 물론 문제지만 더 큰 걱정거리가 있다. 인간의 뇌는 큰 자극을 지속적으로 받으면 작은 자극에는 잘 반응하지 않는다. 이를 '내성'이라고 한다. 술꾼들이 같은 만족을 얻기 위해서 점점 양을 늘여야 하는 이유다. 스마트폰이 우리의 삶을 엄청나게 긍정적으로 변화시킨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렇게 편리한 세상, 그러나 너무 단시간 내에, 너무 많은 자극에 노출되는 것이 아닌지 걱정스럽다. 특히 아동이나 성장하는 청소년들에게는 적절한 제한이 필요할 것 같다. 스스로를 조절하는 전전두엽이 성숙되지 않은 시기에 지나친 자극에 노출되면 작은 일상의 행복이 사라질까 걱정이 된다. 현실의 세상은 늘 재미로 가득 차 있고, 끝없이 자극이 주어지지 않는다. 때로는 고통도 있고 좌절도 있고 아픔도 있다. 근심도 걱정도 많다. SNS 세상이 이런 현실의 도피처가 되어서는 안 된다. 과도한 경쟁과 성취지향적 문화, 즉각적인 보상을 요구하는 한국 사회의 특징이 스마트 시대와 결합하면서 우리의 뇌를 너무 자극에 물들게 하는 것 같다. 빠른 시간 내에 큰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충동적인 측면도 필요하고 앞만 보고 달리는 동력도 도움이 된다. 이런 우리의 성향이 오늘의 우리를 만들었고 스마트 시대, 인터넷 세상에서는 큰 빛을 발휘하는 장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후유증도 만만하지 않다. 너무 앞만 보고 달리다 보면 여유를 찾기가 어렵고 주위가 보이지 않는다. 이제 SNS 문화에 익숙한 우리 시대 청소년들과 젊은 청년들이 SNS로 대표되는 온라인 세상도 재미있지만 사람과 사람이 함께 살며 살아가는 오프라인 세상도 참 재미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으면 좋겠다. ◆ 신영철 정신건강정책 혁신위원회 위원장,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난 10여년간 기업정신건강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며 직장인들의 정신건강 향상을 위해 노력해 왔다. 진료, 방송, 강연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2024년 대통령 직속 정신건강정책 혁신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국민들의 정신건강 증진을 위해 노력 중이다. 2025.02.20 신영철 정신건강정책 혁신위원회 위원장,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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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단상 전입신고, 이제는 어렵지 않아요 한 사람, 한 사람의 정확한 전입신고는 그 지역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든다. 방문, 전화, 온라인 등 전입신고에 대해 문의할 수 있는 창구는 얼마든지 많으니, 행정복지센터를 찾는 민원인이 더 이상 전입신고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김윤서 충주시 주덕읍 행정복지센터 주무관 작년 9월부터 전입신고와 확정일자 부여 신청으로 주덕읍 행정복지센터를 찾는 민원인이 크게 늘었다. 신축 아파트가 준공되고, 입주 신청을 받기 시작하면서부터다. 1차가 919세대, 2차가 930세대니 총 1849세대의 전입신고를 받아야 했다. 몇 달이 지났지만, 아직도 1차 입주 첫날이 기억난다. 다른 날보다 민원이 많을 거라는 예상은 했지만, 민원인이 한꺼번에 방문해 대기인원이 20명, 30명을 넘어갈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날 점심 식사를 건너뛴 채 대기 순번 줄이는 데에만 온 신경을 쏟고, 팀원 모두가 전입신고가 차례로 원만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번호표를 뽑고 1시간 이상 기다리는 민원인이 답답함과 피로감을 느끼지 않게 하는 건 불가능했고, 민원인이 많이 방문할 거라고 예상되는 날은 여전히 두려웠다. 그렇게 9월 한 달 내내 전입신고와 확정일자 부여 신청을 받았다. 민원인은 지난번에 왔던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지만 하루에 100명 이상의 민원인이 다녀가기에 모두 처음 보는 사람 같았다. 팀원들은 본인의 일로도 바쁜 시기에 민원창구에 와서 전입 신고서 작성 방법을 안내하고, 쌓인 민원이 차례로 원활하게 처리될 수 있도록 사전에 상황을 정리해 주었다. 처음 겪는 상황에 당황하던 민원창구의 두 담당자는 주변의 도움으로 무사히 1차 아파트의 입주 지정 마지막 날을 넘겼다. 신청서를 모아둔 상자를 정리하며 이렇게 많은 전입신고를 받았구나 하는 생각에 잠시 울컥했다. 주덕읍의 주민등록 담당자로서 방문 민원인의 전입신고를 받고 때로는 사실조사를 나갔지만 한 번도 전입신고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전입신고는 실제 거주지로 신고하는 것이 원칙이고, 이사 온 날로부터 2주 이내에 신고해야 한다. 나의 실거주지에서 지역 주민이 되어 건강보험, 교육, 복지서비스와 같은 공공 행정서비스를 지원받을 수 있기에 전입신고는 가장 기초적이며 중요한 행정절차이다. 전입신고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바빠서 제때 신고하지 못하는 사람들, 한곳에 오래 살았기에 이사를 간 경험이 적어 전입신고 자체가 생소하게 느껴지는 사람들, 다양한 경우가 존재하기에 읍 행정복지센터에는 전입과 관련한 문의 전화가 자주 온다. 그렇다면 복잡하게만 느껴지는 이 전입신고를 어떻게 하면 쉽고 간편하게 할 수 있을까? 방문신고 시 작성하는 전입신고서 서식 2종.(필자 제공) 전입신고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이사 갈 주소지의 관할 행정복지센터를 방문하여 신분증과 전입지 주소를 확인할 수 있는 서류(부동산계약서 등)를 제출하면 된다. 온라인으로도 신고가 가능하다. 정부24 사이트(https://www.gov.kr)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정부24'를 통해 간단한 인증 후 전입지 정보를 입력하면 행정복지센터를 방문하지 않고도 간편하게 신고할 수 있다. 전입신고를 통해 개인은 그 지역의 주민으로서 공공 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지자체는 인구 통계를 산출할 수 있다. 인구의 이동, 가구의 수, 인구 밀도와 같은 정보는 그 지역에 대한 이해와 공공 서비스 정책 수립에 중요한 자료다. 전입신고를 통해 정확한 주민 정보가 확보되면 행정의 효율성은 높아지고, 주민을 대상으로 더 나은 행정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정확한 전입신고는 그 지역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든다. 주민등록 담당자인 나조차도 전입신고의 중요성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못했었다. 가장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일이기에 더욱 그랬던 것 같다. 2023년 1월, 4700여 명이던 주덕읍 인구는 이제 7300명 가까이로 크게 늘었다. (2025. 2. 17. 기준) 한 지역이 인구 증가로 점차 변화하는 모습을 보며 그 과정에 있었던 공무원으로서 뿌듯함을 느낀다. 이렇게 민원 담당 공무원의 역할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다가 빼곡하게 적힌 전입신고 서식을 보고 전입신고서 작성에 어려움을 겪는 민원인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오늘도 민원인의 전입신고서 작성을 안내하고, 온라인 전입신고 건을 처리하며 전입신고의 중요성을 되새긴다. 생각보다 간단하지만 우리 생활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행정절차가 바로 전입신고다. 방문, 전화, 온라인 등 전입신고에 대해 문의할 수 있는 창구는 얼마든지 많으니, 행정복지센터를 찾는 민원인이 더 이상 전입신고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 김윤서 충주시 주덕읍 행정복지센터 주무관충주시에서 민원담당으로 일하며 겪은 일상을 수필로 쓴 글이 등단의 영광으로 이어졌다. 공직 업무의 꽃인 '민원 업무'로 만난 수많은 일화들이 매일 성장통이자 글감으로 다가오고 있다. 내가 건넨 한마디가 누군가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으로 업무에 임하고 있다. 2025.02.18 김윤서 충주시 주덕읍 행정복지센터 주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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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단상 환경을 보호하는 빨간우체통 'ECO우체통' 무분별하게 버려지는 폐의약품과 폐커피캡슐이 우정사업본부의 우체국 망을 이용하여 분리수거가 된다고하니 우체통이이제환경보호에도 한몫을 톡톡히 하게 된 것 같아서 뿌듯하다. 이재우 강원지방우정청 주무관 올해 여섯 살이 된 아들은 언제 보아도 사랑스럽지만, 자는 모습은 특히나 더 사랑스럽다. 나에게 밤 11시는 하루를 마치고, 잠든 아이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행복에 젖는 시간이다. 하지만 겨울이 되면 그 평화로운 시간에 종종 빨간불이 켜지곤 한다. 깊은 잠이 든 아이의 숨소리가 평소와 다르게 거칠다 싶으면 다음 날 아침에는 십중팔구 콧물을 졸졸 흘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첫돌이 될 때까지 잔병치레라고는 하지 않던 아이는 어린이집을 다니고부터 환절기와 겨울만 되면 감기를 달고 살기 시작했다. 감기가 낫는구나 싶으면 다시 옮아오고, 다른 친구에게 또 옮기고, 그 친구에게 다시 옮아오고. 겨우내 서로 감기를 옮고 옮기는 끝없는 도돌이표가 이어진다. 주변의 육아 선배들은 그러면서 면역체계가 형성되는 거라고, 자연스레 커가는 과정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하지만, 코가 막혀 입으로 숨을 쉬며 자는 아이를 지켜보는 부모의 마음이 편할 리가 없다. 감기가 심해져 고생을 하기 전에, 초기에 잡아야 한다는 마음에 조금만 숨소리가 수상쩍다(?) 싶으면 바로 약을 먹이다 보니, 집에는 점점 약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약을 먹이던 중간에 증상이 바뀌어 못 먹이게 된 약, 비상용으로 사두었다가 사용기한이 지난 약 등. 처음에는 몇 개 되지 않아 선반에 올려두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버려야 할 약들은 점점 늘어났다. 폐의약품은 함부로 버리면 약의 성분이 토양, 지하수, 하천 등에 유입되어 생태계를 교란할 수 있다고 하니, 일반쓰레기로 버리지도 못하고, 보건소를 가자니 번거롭고, 동네 약국에 버리자니 어쩐지 미안한 기분이 들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에 어느새 폐의약품들은 커다란 비닐 가방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까지 쌓여 버렸다. 이 골칫덩어리들을 어떻게 치워야 할지 고민하던 중, 우정사업본부 누리집에서 반가운 뉴스를 읽게 되었다. 바로 'ECO(에코) 우체통'을 도입한다는 소식이었다. 우정사업본부는 2023년 1월부터 우체통 및 수거함을 활용한 '폐의약품 회수 우편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본 서비스는 폐의약품을 우체통에 투함하면 우체국 집배원이 회수하여 소각 장소로 배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세종시를 시작으로 시행된 '폐의약품 회수 우편서비스'는 실시 이후 우수성을 인정받아, 2024년에는 전국으로 확대되었고, 2024년 11월 기준, 전국 49개 지자체와 협약을 맺고 시행되고 있다. 폐의약품은 기존 우체통에도 투함이 가능(전용 회수봉투 또는 일반봉투에 봉함 후 봉투 겉면에 '폐의약품'이라고 기재한 뒤 투함한다. 단, 물약은 제외)하지만 'ECO 우체통'의 도입으로, 서비스 이용의 편의성이 한층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ECO우체통의 모습.(우정사업본부 제공) ECO 우체통은 일반 우편물과 폐의약품 투함구를 분리해 폐의약품으로 인한 일반 우편물의 오염을 방지하고, 투함구의 크기를 키워 투함 시 불편을 최소화한 형태로 제작되었다. ECO 우체통에는 폐의약품뿐 아니라, 폐커피캡슐도 넣을 수 있는데, 폐커피캡슐은 사용한 원두 찌꺼기를 캡슐에서 분리한 후 알루미늄 캡슐만 전용 회수봉투에 담아 투함하면 된다.(단, 아직은 일부 제품만 가능하며 추후 이용 가능 제품 확대를 계획 중이다.) 무분별하게 버려지는 폐의약품과 폐커피캡슐이 우정사업본부의 우체국 망을 이용하여 분리수거가 된다고 하니, 우정사업본부가 국민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환경보호에도 한몫을 톡톡히 하게 된 것 같아서 뿌듯하다. 그리고 벽장 한 편을 차지하고 있는 폐의약품 가방을 보며 굳게 다짐해 본다. 다가오는 봄에는 저 골칫덩어리들을 반드시 치우고 말겠다고. 이제는 ECO 우체통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갖게 된 빨간 우체통을 이용해서 말이다. ◆ 이재우 강원지방우정청 주무관강원지방우정청 회계정보과 소속으로 2022년 공직문학상 동화 부문 은상을 수상했다. 우체국 업무를 수행하면서 느낀 감정들을 동화로 옮겨내 수상의 기쁨을 얻었다. 우체통과 편지가 사라지고 있는 요즘이지만 여전히 우체국에는 온갖 이야기를 담은 우편물과 택배가 가득하다. 이들 속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를 계속해서 듣고 동화로 옮기는 중이다. 2025.02.13 이재우 강원지방우정청 주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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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단상 책이 입을 열기까지 책이 입을 열기까지는 큰 인내심이 필요하다. 내 앞에 앉아 있는 책이, 그러니까 누군가가 말이 더디다면 더욱이 그러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로부터 무언가를 배운다. 한숙희 국립중앙도서관 사서 레이 브래드버리(Ray Bradbury)의 소설이자 프랑수아 트뤼포(Francois Roland Truffaut)의 동명 영화로도 잘 알려진 '화씨 451도'는 책이 사라진 디스토피아적 세계를 다룬다. 소설의 제목에서부터 책의 내용이 잘 드러난다. '화씨 451도'는 종이의 발화점(사실 종이의 발화점은 화씨 451도가 아닌 섭씨 451도다)을 뜻하는데 방화수들은 늘 시민들을 감시하고, 책을 발견하는 순간 그 전부를 태워버린다. 그리고 '화씨 451도'는 방화수 중 한 명이었던 주인공 몬태그가 책을 만나며 변화되는 과정에 대해 그리고 있다. '화씨 451도'가 보여주는 디스토피아적 세계가 더 이상 낯설지만은 않다. 물론 방화수가 있는 것도, 책을 태워버리는 것도 아니지만 책은 제법 우리에게 낯선 존재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층뿐만 아니라 노년층까지도 일명 숏폼(short-form)에 중독되어 있다. 틱톡과 유튜브 숏츠와 같이 빨리 말하고 빨리 즐기는, 불과 60초가량의 영상들이 유튜브를비롯한 각종 소셜미디어 속에즐비하기 때문이다. "불의 참된 아름다움은 책임과 결과를 없애 버린다는 데 있지. 견디기 힘든 문제가 있으면 화로에다 던져 버리면 돼"라는 소설 속구절은 이들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의 모습이지 않을까? 극도의 단절과 고립 또한 우리 사회의 풍경이 되어 가고 있다. 그리고 새삼 그러한 풍경 또한 책과 멀어진 것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로 생각해본다. 몇 년 전부터 문해력이라는 말이 흔하게 사용되기 시작했다. 성인 문해력에 대한 뉴스들이 나오기도 하였다. 책을 읽는 것이 생경하게 되었다는 방증이 아닐까?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사회적, 정서적 고독에 대한 뉴스들도 쏟아져 나왔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누군가와의 만남을 의미한다. 물론 모두 매체가 일면 이러한 만남을 전제로 하고 있으나, 책과의 만남은 느리고, 불편하고, 때로는 답답하기도 하다. 국립중앙도서관 한 켠에 적힌 문구. "세상사에 시선이 따뜻한 사람이 시인이다. 시를 안써도 시인이다". 그 앞에 올해 출간한 첫 시집 아직, 하고 싶은 말이 남아 있어. 책이 입을 열기까지는 큰 인내심이 필요하다. 내 앞에 앉아 있는 책이, 그러니까 누군가가 말이 더디다면 더욱이 그러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로부터 무언가를 배운다. 누군가의 말을 듣는다는 것에는 크나큰 많은 관심이나 정성이 요구된다는 것, 그리고 관심과 정성이 이내 큰 즐거움으로 돌아온다는 것. 그래서 좋은 독자는 곧 좋은 사람이지 않을까? 도서관에는 유독 좋은 사람들이 많다. 도서관의 프로그램에 빠짐없이 참여하는 이용자들을 보면 늘 반갑고 기쁘다. 특정 분야에 대한 관심이기보다 다른 이들과 소통하는 것에서 기쁨을 찾으려는 노력, 이들은 도서관에서제공하는 프로그램이라면 가리지 않고 도서관으로 향한다. 책과의 만남을 통해더 깊고 풍부한 소통을 추구하는 이들이라 더 소중하고 귀하다. 올해 1월, 시집 아직, 하고 싶은 말이 남아 있어를 출간했다. 시집을 건네받고 기뻐하는사람들로부터시(詩)로 소통하는 또 다른 대화를 할 수 있음에 큰기쁨을 느끼는 중이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을 통해 사서로 사는 삶을 돌아본다. 나를 거쳐 간 많은 책들, 그리고 주위에 있던 수많은 도서관 이용자들과 함께. 아직, 하고 싶은 말이 남아 있어 지나쳐버린 수많은 겨울이 서툰 이별 앞에 서서 외면한 채차가운 시선에 마른 꽃을 피운다 생각이 생각을 줄 세우고 가리어진 가슴 언저리에서 먹물 같은 바람이 바닥에 누워 있다 흥겨운 밤이 넘실거리다 허물어지더니눈물 맺힌 아침이 찾아온다 잘 그려지지 않은 낯선 말들이질퍽거리는 종이 위로 튀어 오른다 - 한숙희 詩 '아직, 하고 싶은 말이 남아 있어' ◆ 한숙희 국립중앙도서관 사서국립중앙도서관 국제교류홍보팀 근무, 2021년 공직문학상 시 부문 은상 수상, 같은 해 시인정신으로 등단했다. 우리가 행복한 도서관'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출근하는 36년 차 사서이자 도서관에서의 일상을 시로 구현해내는 시인이기도 하다. 2025.02.11 한숙희 국립중앙도서관 사서